창원시는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념하는 ‘세스페데스 공원’을 그가 머물렀던 왜군 성인 웅천왜성 인근에 조성해 오는 30일 개장한다.
임진왜란때 왜장 고니시가 초청
웅천왜성 머물며 왜군에 선교활동
30일 개장식 27국 주한대사 초청
천주교계 “민족정서 어긋나” 비판
웅천왜성 머물며 왜군에 선교활동
30일 개장식 27국 주한대사 초청
천주교계 “민족정서 어긋나” 비판
경남 창원시가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조선에 와서 진해의 왜군이 주둔한 성에 머물며 미사를 집전하는 등 왜군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했던 스페인 출신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념하는 공원을 만들고 있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행적이나 민족 정서 등을 고려할 때 지방자치단체가 나서 그를 기념하는 공원까지 만드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천주교계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창원시는 “오는 30일 오후 2시30분 진해구 남문동 현장에서 ‘세스페데스 공원’ 개장식과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 제막식을 열기로 했다. 이날 행사에는 스페인, 멕시코, 칠레 등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27개국 주한대사를 모두 초청할 것”이라고 23일 밝혔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16세기 후반 일본에서 선교활동을 했던 인물로, 천주교 신자이면서 임진왜란 때 왜군 선봉장으로 조선에 쳐들어왔던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1593년 12월 조선에 왔다. 그는 1595년 6월까지 고니시가 주둔했던 진해 웅천왜성에 머물며 왜군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미사 집전과 교리 강론을 하고 이교도들에게 세례를 주는 등 사목활동을 펼쳤다.
이 때문에 세스페데스 신부는 한반도를 방문한 최초의 신부로, 그가 집전한 미사는 한반도에서 거행된 최초의 미사로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조선인을 상대로 선교활동을 했다는 기록이나 증거는 없다.
세스페데스 공원이 조성되는 곳은 단일유적으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가마 터 유적이 발굴된 ‘진해 남문동 유적지’로, 현재 이곳엔 복원한 일부 유적과 안내판이 전시돼 있다. 또 유적지 앞쪽엔 세스페데스 신부 고향 사람들이 기증한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가 서 있다. 기념비를 이곳에 세운 것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머물렀던 웅천왜성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창원시는 기념비를 공원 한가운데로 옮기고, 주변에 스페인식 정원을 조성한다. 또 공원 둘레에는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황동으로 형상화한 조형물을 세운다. 이 사업엔 창원시 시비 3억원이 들어간다.
하지만 세스페데스 공원을 만드는 데 대해 천주교계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천주교 마산교구 평신도 모임인 ‘예수의 일꾼’ 추진위원회 정동화 대표는 “창원시가 세스페데스 신부를 기념하는 공원을 세우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왜군을 위해 조선에 온 인물이지 조선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러 온 인물이 아니다. 이는 천주교계 내에서 이미 정리된 문제이다. 그럼에도 세스페데스 공원을 만드는 것은 창원시의 역사적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춘수 신부(정의구현전국사제단 마산교구 대표)도 “세스페데스 신부는 천주교계 내에서도 논란거리이다. 천주교계도 하지 않는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화 사업을 왜 창원시가 나서서 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름 공개를 꺼린 한 천주교 신자는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에서 행적을 선교활동으로 본다면, 세스페데스 신부를 조선에 데려온 고니시 유키나가의 사당도 세워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노무용 창원시 공원개발과장은 “지난 2월 스페인 주한대사가 창원을 방문해서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를 둘러보고, 시에 안내판 설치 등 정비를 요청했다. 이에 따라 세스페데스 공원을 만들어 관광명소화하면서 후대에 역사적 사실을 전승하기로 했다. 세스페데스 신부가 임진왜란 때 조선에 와서 왜군 종군신부로서 역할도 했겠지만 조선에 천주교 복음을 전파하러 왔던 것이기 때문에 기념공원을 세우는 데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세스페데스 신부는 임진왜란 당시 일본에서 활동하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루이스 프로이스 신부에게 보낸 편지에 “굶주림, 추위, 질병 등 일본에서 상상하는 것과는 너무도 다른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 가톨릭교도들의 고난은 너무나도 가혹합니다. 관백 전하(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식량을 보내준다 해도 이곳에 도착하는 양은 실로 보잘것없어서, 전군을 먹여 살리기에 턱없이 부족합니다”라고 적는 등 조선에 머무는 동안 사실상 왜군 종군신부로 활동했다.
글·사진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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