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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농촌여성 계몽’ 성요셉여고, 역사속으로

등록 2016-01-21 19:34

20일 83명 마지막 졸업식…폐교
1962년 미국인 수녀 4명이 시작
2000년대 영어대회 휩쓸며 유명세
한때 27학급까지 학생수 늘었지만
인구감소로 위기…1만750명 길러내
교장 “인류애 정신 잊지 않았으면”
지난 20일 열린 성요셉여고 마지막 졸업식
지난 20일 열린 성요셉여고 마지막 졸업식
“플라타너스 그늘 아래서 수다 떨던 추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강진군청 직원 신유미(43)씨는 강진 성요셉여중고를 나왔다. 그는 1985~91년 6년 동안 성요셉학교에서 꿈 많은 학창 시절을 보냈다. 군동면에서 강진읍까지 왕복 8㎞를 자전거로 통학했다. 당시에는 한 학년이 6개 반, 학생 수가 1천여명이나 됐다. 운동장도 교실도 늘 시끌벅적했다. 특히 성탄절이 다가오면 유리창에다 각자 그림을 붙이고 다 함께 즐거워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동문들이 다 착하고 순박해요. 예민할 때 수녀님들이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주셔서 그런가봐요.” 마지막 졸업식 소식을 들었다는 그는 21일 “마음이 아파요. 학교에 한번 가봐야겠어요. 시골 여학교는 졸업하고 시집가면 지킬 사람이 없어 쓸쓸하죠”라고 아쉬워했다.

반세기 넘는 전통을 지닌 전남 강진읍의 성요셉여고가 지난 20일 열린 마지막 졸업식을 끝으로 문을 닫는다. 졸업식에는 김희중 천주교 광주대교구 대주교, 장만채 전남도교육감 등이 참석해 위로를 건넸다.

성요셉여고는 이날 졸업생 83명을 배출하고, 3월1일자로 공식 폐교한다. 이 학교의 건물은 거점고로 지정돼 건물을 신축 중인 강진고의 임시 교사로 1년 반 동안 이용된다. 교직원 50여명은 공립학교로 옮겨간다.

이 학교는 62년 강진읍 평동리에 천주교 ‘사랑의 시튼 수녀회’ 소속 토마스 아퀴나스, 메리 노린, 머리 티모시, 말틴 드 포레 등 미국인 수녀 4명이 가정학교를 열면서 비롯됐다. ‘농어촌 여성 교육이 필요하다’는 당시 천주교 광주교구 현하롤로 주교의 호소에 응답한 것이다. 이 학교는 이후 겸양·소박·사랑을 바탕으로 인류애를 심어준다는 목표로 52회에 걸쳐 졸업생 1만750명을 길러냈다. 2000년대 이전 원어민 교사가 별로 없던 시절에는 재학생들이 영어 말하기 대회를 휩쓸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하지만 한때 27학급까지 늘었던 학교는 급격한 인구 감소와 군내 고교 수 과다 등 요인으로 9학급까지 줄어 위기를 맞았다. 먼저 성요셉중이 88년 공립인 강진여중으로 바뀌었다. 성요셉고는 입학생이 2009년 5학급, 2012년 4학급, 2013년 3학급으로 줄어들자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폐교 절차를 밟아왔다. 노헤레나 교장은 “마무리하는 과정이 힘들고 어려웠지만 다 함께 새로운 시작을 준비했다. 이 학교를 거쳐 간 이들이 성요셉의 정신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교육정책의 기조가 경제적 효율성에 치중된 현실이 아쉽다. 아름답고 전통적인 것들을 보존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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