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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고마워하는 이웃들 보면 배불러요”

등록 2016-02-02 20:35수정 2016-02-02 20:35

류지현(오른쪽)씨가 설을 앞둔 2일 오후 대전 유천1동 주민센터에서 박용갑 중구청장에게 쌀 2000㎏을 기증하고 있다. 류씨는 17년째 직접 농사지은 쌀을 어려운 이웃과 나눠왔다. 대전 중구청 제공
류지현(오른쪽)씨가 설을 앞둔 2일 오후 대전 유천1동 주민센터에서 박용갑 중구청장에게 쌀 2000㎏을 기증하고 있다. 류씨는 17년째 직접 농사지은 쌀을 어려운 이웃과 나눠왔다. 대전 중구청 제공
17년째 농사지은 쌀 나눠주는 류지현씨

출퇴근하며 농사짓는 도시농부
차에 쌀 싣고 선행…부인도 몰라
“고생하던 때 생각나 이웃과 나눠”
“어려운 이웃들이 명절 때만이라도 땟거리 걱정을 덜었으면 합니다.”

류지현(68)씨는 2일 대전 유천1동 주민센터에서 박용갑 중구청장에게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주라며 농사지은 쌀 2000㎏을 내놨다. 벌써 17년째다.

그는 유천동에서 논이 있는 충남 논산까지 출퇴근하며 농사를 짓는 도시농부다. 논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 20여년 전이니 농사를 지으면서 이웃돕기도 시작한 셈이다.

그는 충남 공주 탄천이 고향이다. 7남매 가운데 둘째인 그는 1976년 대전에 왔다. 먹고살 게 없어 자녀 사남매와 두 동생, 부부 이렇게 여덟 식구가 고향을 떴다. 이 일 저 일 하다 쌀장사를 하면서 돈을 모아 논을 사고 농사를 지었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생을 했지요. 동생과 애들이 다 커 여유가 생기니 고생하던 시절이 생각나 어려운 이웃에게 정을 나눠주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차에 쌀을 조금씩 싣고 와 나눠주곤 해 부인 홍정순(66)씨도 몰랐단다. 여자들이 누구에게 뭐 주는 걸 좋아하나 싶어 몰래 했다. “나중에 보니까 대충 알더라고. 하기야 마누라가 우리 동네 통장이야. 들키니 오히려 홀가분하더라고. 하하하.”

쌀을 받아 들고 고마워하는 이웃을 보면 내 독에는 쌀이 떨어져도 배고픈 줄 몰랐다. 정부도 어려운 이들에게 비축쌀(정부미)을 배급했지만 그는 갓 도정한 햅쌀을 나눠주니 밥맛부터가 달랐다. 그는 이번에도 올해 농사지을 돈과 자식과 부부 먹을 쌀 정도만 남기고 대부분을 내놓았다.

그는 “요즘은 흔하고 값도 헐해 쌀이 예전만큼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다 보니 별로 받고 싶어하지 않는데 쌀을 주는 건 아닌지 조심스럽다”고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골목이든, 시장통이든, 버스 안이든 그를 만나면 알은체를 한다. 이미순(71)씨는 “‘농사꾼 아저씨’ 하면 이 동네 사람들은 다 안다. 잠 못 자고 새벽같이 농사지으러 다니면서 수확한 쌀을 십수년째 나눠주셔서 동네 인심이 좋고 늘 따뜻하다”고 말했다. 그의 쌀은 이날 유천1동의 기초생활수급권자와 차상위계층,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어려운 이웃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졌다.

“본 나이로는 올해가 일흔입니다. 이젠 농사짓는 게 힘에 부쳐요. 그래도 힘이 있는 한 농사를 지어 이웃과 수확을 나누고 살겠습니다.” 흔한 표창 한번 안 받았어도 그는 행복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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