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는 지난 1일부터 도시재생사업의 하나로 좌천동에 있는 제일아파트~증산공원을 잇는 길이 98m, 너비 2m 규모의 13인용 경사형 승강기를 설치해 운행하고 있다. 김영동 기자
지역 현장 l 부산포 역사 되짚는 개항가도
좌천동, 1407년 왜인과의 교역 위해
부산포 설치해 ‘부산의 관문’으로 불려
임진왜란 첫 전투로 군민들 전사하기도
지하철 좌천역부터 증산 꼭대기 잇는
개항가도 골목마다 600년 역사 빼곡
경사도 40% 계단 대신 승강기 타고
정상 오르면 북항·자성대가 한눈에
좌천동, 1407년 왜인과의 교역 위해
부산포 설치해 ‘부산의 관문’으로 불려
임진왜란 첫 전투로 군민들 전사하기도
지하철 좌천역부터 증산 꼭대기 잇는
개항가도 골목마다 600년 역사 빼곡
경사도 40% 계단 대신 승강기 타고
정상 오르면 북항·자성대가 한눈에
지난 2일 오후 2시께 부산 동구 좌천동 제일아파트 옆에 설치된 경사형 승강기 1층 문 앞에 주민 4~5명이 줄을 섰다. 가로 1.35m, 세로 1.35m, 높이 2.6m 크기의 상자형 승강기가 경사도 40%의 경사면에 설치된 통로를 타고 내려와 승강장 앞에 멈췄다. 출입문이 열리자 주민들이 승강기에 차례대로 올라탔다.
승강장에서 만난 주민 박태현(71)씨는 “승강기가 없을 땐 경사로에 있는 계단 190여개를 딛고 올라가야 했다. 승강기 덕분에 아랫 동네에 있는 시장, 병원으로 가기가 수월해졌다. 산꼭대기에 있는 증산공원으로 올라가기도 편해졌다”고 말했다.
경사형 승강기가 설치된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산복도로(산 중턱을 지나는 도로) 동네다. 증산 자락을 타고 경사면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이곳은 조선 초기 부산포 개항에서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근현대사에 이르는 방대한 역사 흔적과 이야기가 얽혀 있다. 그래서 이곳은 ‘좌천역사마을’로 불린다.
부산 동구는 이 마을을 역사문화자원으로 활용하는 도시재생사업인 ‘부산포 개항가도 조성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사형 승강기도 이 사업의 하나로 설치됐다. 동구는 11억원을 들여 좌천동에 있는 제일아파트~증산공원을 잇는 길이 98m, 너비 2m 규모의 13인용 경사형 승강기를 설치해 지난 1일부터 운행하고 있다. 승강기는 제일아파트~증산동로 1구간 36m, 증산동로~좌천아파트 2구간 62m에 각각 1대씩 들어섰다.
동구는 경사형 승강기를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주민들의 공공이송 수단으로도 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김종탁 동구 창조도시추진단 재생사업계장은 “승강기 안전점검은 해마다 승강기협회에서 한다. 사고당 5억원의 사고배상 책임보험도 가입했다. 승강기를 24시간 운영하면서 운행 시간대를 최종 결정할 방침이다. 하루 평균 1000여명이 이용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 승강기 1구간, 좌천역사마을
승강기 출입문을 기준으로 왼쪽·오른쪽 벽면에 여느 승강기에서 볼 수 있는 조작 단추가 있었다. 2층 단추를 누르자 알림음과 함께 출입문이 닫혔다. 승강기는 위쪽에 있는 증산동로에 있는 승강장으로 천천히 올라갔다. 승강기 창을 통해 아래쪽 풍경인 조선시대 부산포가 있던 좌천동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조선 조정은 1407년(태종 7년)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 노략질을 일삼던 왜구를 회유하려고 이곳에 부산포왜관을 만들어 왜인과 교류했다. 조선 조정은 1426년(세종 8년) 부산포와 웅천 내이포, 울산 염포까지 3포를 개항해 왜인과의 무역을 확대했다. 하지만 왜인들은 삼포왜란 등 크고 작은 변란을 계속 일으켰다. 조선 조정은 1544년 4월 사량진(경남 통영시)에서 왜인들이 또다시 변란을 일으키자, 각 지역의 왜관을 모두 폐쇄했다. 하지만 부산포왜관은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까지 유지했다.
부산포는 조선과 일본의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이 체결됐던 1876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항됐다. 일본은 일제 때 좌천동 앞까지 닿았던 바다를 매립해 부산항 규모를 넓혔다. 대륙 진출 교두보, 조선 수탈 창구 구실을 확대하기 위해서다. 승강기 아래쪽으로 보이는 좌천동은 부산포와 부산항의 배후 마을로 이러한 굴곡진 역사의 현장에 있었던 마을이다.
올라가는 승강기 창 왼쪽으로 정공단(부산시 기념물 제10호)이 얼핏 보인다. 1592년 음력 4월14일 임진왜란을 일으킨 왜군은 수도 한양으로 통하는 첫 관문인 부산진성에서 첫 전투를 벌였다. 당시 부산진성은 좌천동에 있었다. 성을 지키고 있던 정발 장군과 수백명의 군민은 1만명이 넘는 왜군에 끝까지 맞서 싸우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1766년(영조 42년) 부산첨사였던 이광국은 정발 장군과 부산진성 군민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부산진성 남문 터에 정공단을 세웠다.
승강기 창 가운데에는 ‘안용복 기념 부산포 개항문화관’이 보인다. 안용복은 조선시대 일본으로부터 울릉도와 독도를 지켜낸 인물이다. 좌천동에서 태어나 수군 출신의 평범한 어부였던 그는 1693년(숙종 19년)·1696년(숙종 22년) 두 차례에 걸쳐 울릉도와 독도를 침략한 왜인을 몰아내고 일본 막부로부터 조선 땅을 확인하는 공식 외교문서를 받아냈다. 조선 정조는 시문집 <홍제전서>에서 안용복을 ‘용감한 군사’라고 칭송하고 있다. 그의 기록은 오늘날까지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승강기 창 오른쪽에는 ‘부산진일신여학교’(부산시 기념물 제55호)가 나타난다. 이 학교는 1895년 부산항 강제 개항으로 우리나라에 온 오스트레일리아 장로교 선교회가 만든 부산·경남 최초의 신여성 교육기관이다. 이 학교의 선생과 학생들은 1919년 3월11일 부산·경남 최초로 3·1만세운동을 펼쳤다. 이 학교 건물은 1905년 근대식 건물로 다시 지어졌는데, 원형이 잘 보존돼 있고 균형·비례미를 간직한 서양식 건물로 건축사에서도 중요 문화재로 꼽힌다.
■ 승강기 2구간, 왜성이 있는 증산공원
승강기는 위쪽 증산동로의 승강장까지 36m를 1분여 만에 도착했다. 주민들은 증산공원 승강장까지 올라가는 승강기에 다시 올랐다. 승강기가 오르내리는 통로 옆에는 증산공원까지 나무데크 계단이 이어져 있다. 승강기 통로 중간에는 전망대가 있었다.
증산공원으로 올라가는 승강기 안에 이야기꽃이 피었다. 증산공원 근처에 사는 송영순(76)씨는 “30여년 동안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렸는데, 승강기가 설치돼 집까지 바로 가니 무릎과 허리가 편하다”고 말했다. 김정수(65)씨는 “승강기 문 여닫는 단추 안내가 영어로 표시돼 있어 눈이 어두운 사람은 보기 불편하다”고 했다.
승강기를 타고 62m 거리의 경사 길을 2~3분 만에 도착해 승강장에 내리니, 눈앞에 ‘증산왜성’이라고 적힌 안내판이 보였다. 증산왜성은 임진왜란 때인 1593년 3월부터 8월까지 왜군 장수 모리 데루모토가 1만여명을 동원해 만든 성이다. 왜군은 부산진성을 함락한 뒤 석재를 가져와 이곳에 성을 지어 조선 침략의 전진기지로 삼았다.
왜성 대부분의 터는 증산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일부 터는 동구도서관, 좌천아파트, 단독주택, 농경지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증산공원으로 가는 길을 따라 올라가면 왜성의 성벽들이 늘어서 있다. 성벽 전체 길이는 1200m가량이며 높이는 5~6m이다. 성벽은 증산공원 전체를 겹겹이 두르고 있는 모양새다. 성벽 바로 아래 빈터에는 주민 체육시설들이 들어섰다.
증산공원 꼭대기로 가는 길에는 3~4m 높이의 왜성 중심부 성곽 성벽이 나타나는데, 곳곳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거나 새로 쌓은 축대에 가려져 있다. 증산공원 꼭대기에는 1400여㎡ 규모의 넓은 터가 있다. 왜성의 전투지휘소인 천수각이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농구장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있는 3층짜리 전망대에 올라가면 부산 북항, 좌천동, 자성대 등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보인다.
2년 동안 좌천역사마을 재생사업에 참여한 신병윤 동의대 교수(건축학과)는 “좌천동은 항구도시 부산에서도 관문 구실을 했던 곳이다. 이 때문에 좌천동은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 문화를 접한 곳이며, 임진왜란과 독립운동 등 외세의 침략에 적극적으로 저항한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좌천동은 부산포와 부산항을 중심으로 사람, 경제, 군사, 문화 등 숱한 역사가 퍼져 있는 마을이다. 좌천동의 개방·포용·역동·저항성을 되짚어 부산의 미래 가치 창조의 길을 재발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산/글·사진 김영동 기자 ydkim@hani.co.kr
승강기를 타고 올라간 증산공원 전망대에 오르면 부산 북항이 한눈에 펼쳐진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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