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 원유유출사고로 피해를 입었으나 배상이나 보상을 받지 못한 주민들을 위한 태안특별법 ‘보상받지 못한 자’ 지원 기준을 마련하는 최종 용역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2일 충남 태안 몽산포 바닷가에서 맨손어민 박재규씨가 개불을 잡고 있다.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지역 현장 l 태안 기름유출 사고 9년…
주민 배·보상 3800억원 그쳐
입증 힘든 ‘맨손어업’ 보상조차 안해
2명만 입증서류…그나마 인정 안돼
“보상못받은 사람 응어리 풀어줘야”
정부 8년째 고민중…4차 용역 발주
1인당 최대 226만원 총 1267억원 예상
대상선정·배분 방식 놓고 갈등 우려
주민 배·보상 3800억원 그쳐
입증 힘든 ‘맨손어업’ 보상조차 안해
2명만 입증서류…그나마 인정 안돼
“보상못받은 사람 응어리 풀어줘야”
정부 8년째 고민중…4차 용역 발주
1인당 최대 226만원 총 1267억원 예상
대상선정·배분 방식 놓고 갈등 우려
2007년 12월7일 오전 7시6분, 거센 파도에 휩쓸린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이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 북서쪽 5마일 해상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다. 서해 바다는 원유로 뒤덮이고 사람의 삶과 자연 생태계는 파괴됐다.
태안 사고 배·보상 주체는 사고 주체인 삼성중공업 크레인선단과 유조선인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등 두 곳이다.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사 쪽의 사고 책임이 인정돼 화주·석유업계가 분담해 만든 국제유류오염보상기금(IOPC Fund, 국제기금)이 보상 절차를 개시했다. 피해 주민은 국제기금이 인정한 피해로 합의하거나, 사정재판을 신청해 법원에서 보상액을 판단받을 수 있다.
9년 만에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사정재판의 배·보상금 규모는 겨우 3800억원이다. 국제기금은 보상 한도 안에서 입증된 피해만 보상할 뿐, 입증 안 되는 피해는 보상하지 않는다. 입증자료가 없어 보상받지 못한 주민을 위해 국가가 피해를 보전하는 취지에서 만든 게 태안특별법 제11조 ‘보상받지 못한 자’에 대한 지원 조항이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보상받지 못한 자’ 지원을 위한 4차 용역을 발주했다.
■ 개불잡이 달인 박재규씨와 태안사고 “구멍 두 개가 연결돼 있슈. 발로 눌러 물이 쏙 들어가는 구멍에 개불이 있어유.”
지난 2일 오후 태안 몽산포에서 만난 박재규(60)씨는 소문난 개불잡이 달인이다. 콜라병 닮은 자루가 눈길을 끄는 삽으로 “서걱서걱” 갯벌을 팠다. 자루에 곡선이 생긴 것은 삽질할 때 장갑에 묻은 모래가 사포질하듯 자루를 조금씩 깎기 때문이다.
그는 개불을 잡아 삼남매를 뒷바라지했다. 안면도~마검포~몽산포 갯벌에서 하루 500~600마리씩 개불을 잡아 한 해 3500만원 벌이를 했다고 한다. 기름배가 터질 당시 삼남매는 인천의 대학과 고교에 다녔다. 몽산포에는 기름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아무도 이곳의 개불을 사려 하지 않았다. 삼남매에게 기숙사비, 점심값도 못 줬다. 살기 위해 밭에 나가 낮엔 고추 따고, 밤엔 참깨 털며 하루 17시간씩 일했다.
“사고 뒤 주문이 끊기고 값싼 중국산이 수입되는 통에 꼬박 7년을 놀았슈. 중국산이 600원으로 오르자 태안 개불을 찾는 이들이 생겨 지난해부터 다시 개불을 잡아유.”
그가 받은 배상금은 800만원이 전부다. 민박집 영업을 못 한 손해도 포함돼 있다. 소득을 입증하면 배·보상을 잘 받는다고 해 13년 동안 개불을 횟집에 납품한 일지를 국제기금 쪽에 냈다. 태안에서 이런 입증서류가 있는 ‘맨손어민’은 그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그러나 국제기금은 ‘얼마든 만들 수 있는 자료’라며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보상받지 못한 자’에 대한 지원이 피해 주민의 응어리진 속을 위로했으면 좋겠다”면서도 끝내 미간의 깊은 주름을 펴지 못했다.
■ 태안특별법 11조 ‘보상받지 못한 자’ 지원 배·보상이 사실상 끝나면서 피해지역 주민들은 ‘보상받지 못한 자’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두고 있다. 이 규정은 ‘허베이스피리트호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의 지원 및 해양환경의 복원 등에 관한 특별법’(태안특별법) 제11조 제1항 제5호에 근거하고 있다. ‘피해를 입증하는 서류가 있어야 피해를 인정하는 국제기금의 원칙 때문에 보상받지 못한 영세사업자·맨손어민 등을 국가가 지원하는 최소한의 근거를 만들자’는 게 입법 취지다.
이를 위해 정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오는 8월까지를 기한으로 제4차 용역을 발주했다. 지원 대상 선정과 개별 지원금 산출, 지원금 산출 방식의 형평성 등을 검증하기 위한 것으로, 한국해양수산연구원 등이 용역을 맡고 있다.
앞서 1차 용역(2008.10~2009.10)에서는 태안 등 피해지역 11곳의 주민 가운데 국제기금 사정이나 법원 판결에서 태안 사고로 피해가 발생했다는 인과 관계는 인정받았으나 평균치 이하의 적은 보상을 받은 자를 지원 대상으로 정했다. 2차 용역(2010.9~2011.11)에서는 이를 구체화해, 피해는 인정됐지만 대책위원회가 정한 기준 이하의 보상을 받은 자를 지원 대상으로 확정했다. 3차 용역(2013.6~2013.11)에서는 지역별·업종별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국제기금 사정과 사정재판 결과를 기준 삼아 인용 인정률을 전체 인정률로 나누는 지급액 확정 방법을 도입했다.
첫손에 꼽히는 관심사는 지원금 규모다. ‘보상받지 못한 자’ 지원 규모는 배·보상 총액(기각자 제외)을 기준으로 국제기금의 1018억원(7만8218명, 1인당 약 131만원)에서 사정재판의 2124억원(9만2251명, 1인당 약 226만원) 사이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해양수산부의 지원안은 평균인 1267억원이다.
지원 방식도 관심거리다. 피해지역들은 각각 유리한 배분 방식을 주장한다. 기각자가 많은 보령·당진은 기각자도 지원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홍성·서천은 법원의 인정을 받지 못했어도 실제 피해가 있다면 지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태안군은 피해 수준별로 지역을 차등하고 극심한 피해를 입은 곳부터 먼저 지원하자는 의견을 냈다.
그러나 ‘보상받지 못한 자’ 지원의 관건은 ‘누가 대상을 정하느냐’에 있다. 그동안 용역에서는 피해 자치단체가 결정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에 대해 충남도 등은 정부가 중앙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지자체별로 심사하면 오차가 나타나 피해 주민 사이에 갈등이 커질 수 있어 정부가 심사를 총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문승일 태안군유류피해대책위연합회 사무국장은 “돈 얘기만 나오면 인심이 흉흉해진다. 한 어촌계는 28억원의 보상비를 받고도 주민간 이견을 빚어 3년째 소송하고 있다. 정부가 지원 대상을 정하는 심사업무를 맡는 것이 주민간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안”이라고 밝혔다.
해양수산부 허베이스피리트피해지원단 조규동 사무관은 “지원 대상을 결정하는 업무는 지원액을 결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과제다. 현재 주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태안/송인걸 최예린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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