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언론인 장안영씨
김성원의 ‘서하당 유고’ 완역해 박사학위 받은 전 언론인 장안영씨
“조선 중기 문단을 대표하는 ‘성산사선’ 네 분 가운데 유일하게 완역되지 않았던 서하당 김성원 선생의 작품을 널리 알리게 돼 기쁩니다.”
<역주 서하당유고(棲霞堂遺稿)>로 지난 2월 전남대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장안영(57·전 <광주일보> 정치부장)씨는 18일 “서하당 후손들에게 직접 논문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 박사는 논문에서 16세기 호남 문인 김성원(1525~97)의 ‘판본’(1984년)에 실린 시와 편지, 행장 등 446수를 완역했다. 서하당이 지은 한시만을 추려도 230수에 이른다. 그는 “서하당의 시 중에는 누정이나 명승지에서 느낀 즉흥적 감정이나 세상을 관조하는 은자의 시선을 담은 작품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1525년(중종 20년) 광주광역시 충효동에서 태어난 김성원은 전남 담양 창평면의 성산 일대에 자신의 호를 딴 ‘서하당’과 ‘식영정’을 짓고 당대 문인 석학들과 교유했다. 두 정자는 인근의 환벽당과 더불어 ‘성산시단’이라 불리며 조선 중기 시문학 전성기의 산실로 꼽혔다.
장 박사는 “이수광의 <지봉유설>과 허균의 <성소부부고>에 언급된 것처럼, 호남엔 16세기에 문단을 주도했던 인물들이 매우 많았다. 이 가운데 임억령, 김성원, 고경명, 정철 등 4명을 ‘성산사선’(星山四仙)으로 일컫는데, 유독 김성원의 작품만 지금껏 번역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이, 기대승 등 당대의 석학과도 교유했던 김성원은 송강 정철(1536~93)의 인척이며, 함께 공부한 동학이기도 하다.
“김성원 선생의 문집에 대한 번역과 주석이 16세기 시단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길 기대합니다.”
장 박사는 “평생토록 성산을 지키면서 많은 시인들이 교유할 수 있는 공간(정자)을 제공했던 문인이 서하당”이라며 “당대 최고의 문인들과 시를 주고받았지만 작품 세계 등이 잘 조명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서하당의 문집뿐 아니라 일부 호남 문인들과 학자들의 고문헌이 제대로 보존되지 않아 안타깝다.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성원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동복현감으로서 의병 활동에 나섰으나, 1596년 조카 김덕령이 무고로 옥사하자 은둔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던 중 화순에서 왜병을 만나 생을 마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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