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운동가 이기홍(1912~1996) 선생의 유고집 출간을 축하하는 자리가 열린다.
민족운동가 이기홍 선생 유고집 출판기념회가 20일 오후 5시 광주시 동구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옛 가톨릭센터) 7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기홍 선생의 삶은 “선생 개인이나 가족의 수난사에 그치지 않고 우리 현대사의 모순과 폭력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민족수난사의 축소판”이었다. 전남 완도에서 출생한 선생은 1929년 광주고보 2년 재학중 광주학생독립운동에 참가했고, 이듬해에는 백지동맹을 주도하여 퇴학당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과 농민운동, 해방 후 이승만 정권과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는 사회운동에 실천적으로 참여한 분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매 정권마다 15회 이상 검거, 12년 6개월 투옥생활을 거쳤다.
유고집은 광주지역 인사 108명이 간행위원으로 뜻을 모으면서 고인의 타계 20년 만에 나오게 됐다. 1권은 ‘내가 사랑한 민족, 나를 외면한 나라’이고, 2권은 ‘역사의 교훈, 우리 민족의 미래’이다. 유고집엔 고인의 굴곡진 삶과 방대한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이 책에 자신의 삶과 한국 근현대사 및 세계 각국의 민족주의 관련 사상을 남겼다. “합방 망국 이후 친일 반역세력의 득세와 해방 후는 물론 군사정권으로까지 이어지는 친일세력에 의한 부와 권력의 독점 구조는 반드시 해소, 극복해야 할 민족적 숙제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던 저자의 생각이 책 곳곳에 배어 있다.
안종철 간행위원회 집행위원장은 “광주·전남 해방공간의 정치상황에 대해 연구하면서 이기홍 선생을 시도때도 없이 찾아가 여쭸다. 해방공간의 지방상황을 기록한 자료가 없어 구술이 대단히 중요했다”며 “선생은 민족운동의 과정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동지들의 이름 하나라도 빠짐없이 기록에 남기는 것을 마지막 의무라고 생각하셨다”고 말했다. 이기홍 선생은 75살부터 시력이 약화돼 80살이 되면서 시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1990년대 초부터 이기홍 선생의 구술작업을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이기홍 선생은 구술 작업이 끝나고 파일이 건네진 뒤 작고했다.이홍길 간행위원회 공동위원장(전 전남대 사학과 교수)은 “고인은 분단 조국을 바로 세우기 위해 온갖 탄압과 질시 속에서도 꿋꿋한 자세를 굽히지 않았다. 객관을 중시하는 과학적 태도와 실질을 수용하는 정직한 자세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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