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잘 어우러진 도시는 좋은 혹은 매력적인 도시의 대표적 예다. 최신식 건물만 있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 도시의 한편에 시간의 흔적이 오롯이 남은 건물들 사이로 여유롭게 걸을 수 있는 길을 가진 도시가 좋은 도시다. 그 길가에 예쁜 꽃이나 나무도 좋겠지만, 그리 높지 않게 늘어서 있는 잘 디자인된 상점이나 맛집이 늘어선 길이 더 재미있다. 주차가 불편해도 감수할 수 있다. 이젠 인구도 줄어들 것이 분명하니 더는 도시 외곽에 대규모 택지를 개발하던 방식은 답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구도심을 살려서 사용해야 하지만 잘 개발하면 새로운 도시가 줄 수 없는 큰 장점이 있다.
유럽의 멋진 도시들은 보기에 비슷해 보이지만 만들어진 시기에 따라 건물의 모양과 사용한 재료, 개발된 기술들의 차이로 한 시대를 대표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위에 시간의 흐름이 덧씌워져 과거와 현재가 어우러져 지금에 이른 것들이다. 그 도시들은 막대한 재화를 투여해 당대 최고의 건축기술과 비싼 재료로 구현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런 건물과 도시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문화적 안목이 중요한 배경이다.
광주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100년이 넘었으니 굳이 역사가 없는 도시라 할 것도 없으나, 오래되었을 뿐 매력적이지는 않다. 과거의 가치는 오래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에 최선이었거나 현재에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어야 커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 도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70년대 이후 건물들의 재료인 콘크리트는 회색빛의 싸구려 이미지다. 도시 곳곳의 빈틈마다 올라가는 삐죽한 아파트는 나쁜 인상만 덧씌운다. 자기 집만 좋으면 됐지 도시의 전체적인 모습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어서다. 그 근본 이유는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경제력 때문이긴 하다.
20년 전 쯤 우리가 선진국이 된 것처럼 할 때, 머지않아 건설업이 사양 산업이 될 거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발전해가는 과정에서야 도로나 건물을 짓는 일이 많겠지만, 어느 정도 다 짓고 나면 기껏해야 보수하는 정도일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거라 단언했다. 지어진 집들이 그렇게 정성 들여 지은 것이 아니고, 당장의 필요에 급하게 지은 것들이어서 얼마간 사용하다가 부수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건축물에, 도시에 살면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 믿었다.
건설업이 계속 발전할 것이라는 믿음이 깨진 것이 얼마 전이다. 마음속에는 더 잘 살 것 같은 희망이 없진 않으나 이 상태로 가는 것도 다행일 것이라는 불안감이 있다. 부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물을 어떻게든 고쳐가며 살아가야 하고, 못났다고 생각했던 건물들을 참아내야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이 완공되면 구도심이 활성화될 계기일 거라 기대했는데, 생각보다 더디다. 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아닌 단독주택에 살아보려는 욕구가 있고, 그것도 구도심에서 땅을 알아보기도 하고 나아가 기존의 집을 리모델링해서 살아보려 한다. 그런데 땅값이 너무 비싸다. 현재를 끊임없이 자극해서 만들어져야 할 도시의 재생이 땅을 통해 이익을 기대하는 사람들에 의해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다. 애써서 지키고 가꾼 ‘푸른길 공원’ 주변은 땅값이 더 오를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때문에 여전히 빈터이고 폐가이고, 이익 좀 더 보려고 ‘못난’ 원룸들이 들어섰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더 발전할 리 없다고 믿어야 하고, 기대심리로 부풀려진 땅값도 허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장 자기 땅에서 올려야 할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어떤 집을 짓고 어떤 삶을 살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카페나 음식점을 오가는 행인이 아니라, 집을 짓고 사는 주민이 그 동네의 주인이 되는 것이 도심 재생의 시작이다. 과거의 길과 집들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 녹아있는 동네가 많은 곳이 좋은 도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