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꾼 고운 얼굴, 줄서는 훈남 행렬.’ 한 업체가 이런 문구를 겉면에 새긴 청소년용품을 판매해 불매운동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광주지역 시민단체 4곳은 5일 청소년들한테 의류·문구·잡화 등을 파는 업체 ‘반8’의 상품 판매를 제한해 달라고 국가인권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에 진정서를 냈다. 이 진정에는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참교육을 위한 학부모회 광주지부, 광주여성민우회, 아인권지기 활짝 등이 참여했다.
이들이 문제 삼은 상품은 온라인 쇼핑몰과 서울·광주 등지 문구점에서 팔리는 공책, 메모지, 포스트잇, 지갑, 필통, 손거울, 티셔츠 등 30여종이 넘는다. 이들 상품엔 ‘얼굴이 예쁘면 공부 안해도 돼요’, ‘화장해서 연애할래, 맨얼굴로 쏠로될래’ 등 여성의 외모를 거론하는 문구가 담겨 있다. 이들 단체는 “외모에 신경 쓰는 인물을 모두 여성으로 묘사하는 등 심각한 성차별 내용을 담고 있다. 청소년이 반복적으로 접촉하면 성별 고정관념을 갖게 되고,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받아들이게 된다”고 지적했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아내의 얼굴이 바뀐다’, ‘10분만 더 공부하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등 공부 시간과 결혼 대상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문구들도 도마에 올랐다. 시민단체들은 “학습의 목적조차 결혼으로 단순화시키고 있다. 이런 문구들은 학력과 학벌에 의해 더 우월한 지위를 확보할 수 있다는 차별적 표현”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이런 문구들은 타인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사회적 편견과 부정적 평판을 확산시키는 차별이며, 국가인권위원회법과 시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에 어긋난다”고 밝혔다. 시민모임의 활동가 임하성씨는 “가벼운 유머에 정색하고 대응한다는 반응도 예상했다. 사회의 전반적인 인권 의식 수준이 낮기 때문에 이런 심각한 차별 행위조차 대충 넘어간다”고 말했다. 이들은 국가인권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처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불매운동 시기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이 업체는 지난해 2월 ‘대학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등의 문구가 적힌 학용품을 판매하다가 이 단체들의 판매 제한 요구를 받고 사과한 바 있다. 당시 업체 쪽은 “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뜻으로 온라인에 유행하는 문구들을 차용했을 뿐 성별·학력·직업 등을 차별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고 해명했다.
안관옥 기자
okahn@hani.co.kr, 사진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광주시민모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