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동 전 <한국일보 시카고> 편집국장의 수상 소감문 일부.
“미국 시카고에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내릴때만 해도 잔잔했던 마음이 광주가 가까워지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4일 5·18기념재단과 광주·전남기자협회가 주는 5·18언론상(공로상)을 받은 조광동 전 <한국일보 시카고> 편집국장은 “그 가슴에 36년 전, 1980년 5월의 광주가 밀려왔다”며 미리 적어 온 수상 소감을 읽어갔다.
1975년 <한국일보> 외신부 기자로 재직하다가 시카고에 파견돼 당시 <한국일보 시카고> 편집국장을 맡고 있었던 그는 5월 진상을 보도하게 된 경위를 담담하게 밝혔다. “광주 시민들의 분노한 함성의 파도가 미국 텔레비전과 신문을 통해 숨가쁘게 보도되면서 미국에 사는 동포들의 가슴에도 작은 물결이 일었습니다.”
당시 한국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80년 5월의 진실을 보도할 수 없었다. 조 전 국장은 “저는, 비록 미국 시카코의 한 모퉁이에서 작은 목소리지만, 이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보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것은 용기가 아니라 용기있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이었고, 역사가 불의 속에서 격랑할 때 함께 항해하지 못하지만 희생과 헌신을 기억하려는 최소한의 인간도리였다”고 회고했다.
조 전 국장은 이 일로 신문사를 떠나야만했다. 그리고 “흑인과 히스패닉 동네에서 옷 장사를 시작했고, 기자에서 운동가가 됐다”고 한다. 그는 “기자의 길에서 탈선하는 것이 고통스러웠지만, 조국의 아픔에 동참할 수 있다는 위로와 치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세월의 아픔을 씻어내고 광주는 한국 민주주의 성지, 시대의 선도자가 되었습니다. 망월동으로 간 열한살 소년의 영혼은 흙 속에서 쉰이 다 되었고, 설흔 다섯의 청년이었던 저는 미국에서 일흔살이 넘었습니다.”
80년 5월은 조 전 국장의 운명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됐다. 이후 그는 “미국 시민이 되는 선택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 했다. 조 전 국장은 “영령들 앞에서 이 상을 받는 것이 부끄럽지만, 이 상은 정신의 고향을 잃고 방황했던 저에게 새로운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에 한 줄기 빛을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전 국장은 “저의 선택으로 ‘외로운 길’을 선택한 아내와 함께, 그리고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기다림의 삶을 살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이 상을 받겠습니다.” 조 전 국장의 소감을 시상대 옆에서 듣고 있던 그의 아내가 결국 눈물을 흘렸고, 참석자들은 큰 박수로 공감의 마음을 전했다.
조 전 국장은 1990년대 말 <한국일보 시카고> 편집국장으로 복직해 한미TV 부사장, 시카고 라디오 코리아 주간을 지내고 한국 이민자 문화 유산을 전승하기 위해 인터넷 박물관인 ‘코리안 아메리칸 헤리티지 소사이어티’를 발족하고 공동 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5·18기념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