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전북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 부연구위원 사회적 지위와 경제력의 높고 낮음은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데 문화예술의 취향이나 선호에도 위계가 있다면? 상류층은 고급예술을, 하류층은 저급예술을 좋아하고 즐긴다고 하면 동의하는가. 적어도 1960년대 후반의 프랑스에선 이런 논리가 통했다. 문화사회학의 핵심으로 통하는 부르디외 이론이 기본적으로 내세우는 가설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이 가설이 통할까. 미국의 피터슨이란 학자는 '옴니보어(잡식동물)' 이론을 제시한다. 상류층이 클래식과 오페라에서부터 뮤지컬, 록, 심지어 힙합까지 좋아한다는 것이다. 배타적이고 제한적인 고급예술뿐 아니라 저급예술까지 포괄적으로 수용한다는 뜻이다. 피터슨과 연구자들이 후속연구를 진행해보니 시간이 갈수록 ‘잡식 경향’이 상류층뿐만 아니라 중상층으로 확대되더란다. 옴니보어 문화향유가 특정 시기, 특정 계층만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사회에서 주목해야 할 사회현상임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싫어하는 음악 장르가 줄어든다는 연구부터,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일수록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다양해진 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은 비슷한 장르의 영화를 찾는다는 연구도 있다. 한마디로 ‘있는, 배운’ 사람들이 ‘뽕짝’부터 클래식까지, 할리우드영화부터 독립영화까지 다양하게 즐기고 있고, 그 성향은 확대되고 있다는 말이다. 필자는 올해 ‘전북도민 문화향유실태’를 조사했다. 전북도민을 대상으로 1년 동안 9개 장르별 예술행사를 직접 관람한 실태(일명 소극적 옴니보어)를 분석해보니 남자보다는 여자가, 나이가 적을수록, 학력이 높을수록, 월 가구소득이 높을수록 소극적 옴니보어 태도가 두드러졌다. 특히 학력이 소득보다 옴니보어 문화향유에 더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 예술행사에 참여자로 나서는 적극적 옴니보어에서는 양상이 또 달랐다. 성별, 나이, 학력은 별 영향을 주지 않았다. 월 가구소득이 500만원 이상인 경우가 오히려 100만~200만원인 경우보다 직접 참여하는 예술 장르 개수가 적었다. 나이에서는 50대가 가장 적극적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이 옴니보어 문화향유에 미치는 영향은 어떤 요인보다 컸다. 아동기 때보다는 청소년기에 받은 문화예술교육이 더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최근 1년 안에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경우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소극적 옴니보어가 나타날 확률이 3.8배, 적극적 옴니보어가 나타날 확률이 15.3배에 달했다.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입증하는 결과이다. 월 가구소득 100만원 이하인 경우를 제외하고 소득수준이 적극적 옴니보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도 주목할 점이다. 문화예술계에서 누누이 강조하는 “문화적 소외계층과 경제적 취약계층은 동일하지 않다. 문화복지와 사회복지는 다르다”는 주장이 틀리지 않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문화현상을 연구하는 일이야 전문가의 영역이라고 해두자. 그러나 국민의 문화향유를 증진하는 정책 문제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국가의 책무가 되고 국민의 행복한 삶과 직결되는 영역으로 확대된다. 문화향유는 상류층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모방적 소비’라는 개념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여전히 많은 사람은 클래식이 대중음악보다, 예술영화가 대중상업영화보다 질적으로 우수하다는 주장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상류층이 즐기던 클래식 같은 고급예술을 대중화시키려는 일에 정부가 나서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고급, 저급이라는 문화예술의 층위가 무너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다양하게 즐기고 있는가가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융성’의 시대라는 말이 자주 나온다. 이른바 문화의 옴니보어 시대에 1960년대 프랑스 사회에 어울리는 정책을 정부가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많은 사람이 고급예술을 즐기도록 하는 정책도 필요하지만 이제는 ‘문화향유의 폭넓음’을 위한 정책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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