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천주교 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제작한 <1980년 광주민중항쟁 기록사진집-오월광주> 표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5개 원 가운데 5·18을 기념하는 ‘민주평화교류원’ 전시 콘텐츠 용역책임자였던 황지우(전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시인은 지난 22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옛 도청 본관 상황실(1층)과 ‘부지사실’(2층)은 80년 5월 당시 열흘간의 서사가 숨 가쁘게 이뤄진 곳이어서 복원해야 한다. 용역 당시에도 (문화전당 쪽에)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5·18 옛 도청 본관과 회의실은 5·18항쟁 당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황 시인은 “옛 도청 본관하고 그 옆에 도청 회의실은 시민군이 식사하고, 잠을 잠깐 자고 하는 공간이었다. 80년 5월 26일 자정 이후 진압 때 윤상원 등이 전사한 곳으로, 5·18의 서사와 관련해 매우 중요한 건물”이라며 “옛 도청 본관과 회의실은 원형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도청 본관 회의실 건물 자체를 ‘전시적 오브젝트’로 하자고 주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총탄 흔적 복원 주장에는 5·18단체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황 시인은 “정말 탄흔인지 아닌지 (흔적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그것(총탄 자국)을 의미로 뜻을 간직해야 한다. 80년 5월 당시 현장의 끔찍함이 보전돼야 하지만 너무 미세한 부분에 천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용역 책임을 진 뒤 5월 관련자들의 증언을 ‘크로스 체킹’했던 그는 “80년 5월 진압 직후부터 옛 전남도청 이전 때까지 도청이 사무실 건물로 사용됐다. 구 정권에 의해 (건물이) 다 칠해버렸다고 봐야 한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도 뒤져보고 거의 못 찾는다고 했다. 설사 (총탄 흔적을) 십여 발 정도 찾는다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그 위치를) 특정하면 광주항쟁의 거대 서사가 가진 상상이 축소된다. 그래서 그것을 의미로 간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80년 5월의 옛 도청 안에 ‘방송실’도 별도로 있었던 것이 아니라고 한다. 황 시인은 “일각에서 방송실과 탄환 흔적까지 복원하자고 하는 것은 그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방송실이 따로 없었다. 상황실 안 경리 여직원 책상 위의 캐비넷에서 마이크를 꺼내서 ‘알림사항’ 등을 아나운싱했다. 상황실에서 방송했던 증언자를 하루 동안 인터뷰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전시 콘텐츠 구축 공사를 하면서 옛 도청 본관의 변형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지금 되고 있는 것은 (내가 용역에서 제안했던 것의) 20~30%도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청 본관 내외부를 흰색 페인트로 칠하고 내부에 시멘트를 바르고 있는 것을 “행정편의주의”로 꼬집었다. 이 때문에 황 시인은 “옛 도청 본관에도 오월정신의 아우라가 없더라”고 지적했다. 그는 “감동적이고 사람 뭉클하게 하는 것은 항쟁 관련자들의 증언들을 모아 도청 본관 안으로 ‘워드 페인팅 방식’으로 바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 시인은 “(그런 것을) 할 수 있을 때가 있었지만 오로지 ‘하드웨어’인 문화전당 건물 짓는 데만 ‘올인’했었다”며 “지금 시점에서 풀기 힘들다. 궁극적으로 시간을 갖고 할 수밖에 없다. 유럽의 괜찮은 홀로코스트 등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거기서도 증언자들과 역사학자들이 오랫동안 싸웠다. 그래도 그곳에선 싸우더라도 이야기한다. 인내하고….”라고 말했다.
한편 문화전당은 황 시인의 용역을 바탕으로 전시 콘텐츠 구축을 시작했으나, 5·18단체가 도청 상황실(방송실)과 총탄 흔적 복원 등을 주장하자 지난 1월 공사를 중단한 상태이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1980년 광주민중항쟁기록사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