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사제' 조비오 신부는 들불야학 창립을 도왔다. 1978년 6월 광주 광천동성당 안 교리강습실에서 문을 연 들불야학은 5·18항쟁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사진은 518사적지(들불야학 터) 표지석.
‘“쌀은 받으세요.”
지난 21일 선종한 조비오 신부는 친조카인 조영대 광주 용봉동 주임신부에게 선종 전 “내가 세상을 뜬 뒤 조화나 부의금은 받지 말고 소화자매원의 장애인을 위한 쌀은 받아도 된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지적장애인 200여명을 돌보는 소화자매원 이사장이던 조 신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소화자매원의 재정 문제를 걱정했다. 장의위원회는 조 신부 선종 이후 고인의 유지를 기려 조화 대신 쌀 화환만 받았다.
들불동우회(회장 이강)는 마지막까지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랑을 남긴 조 신부의 뜻을 잇기 위해 소화자매원에 쌀을 기부하기로 했다고 23일 밝혔다. 이 모임은 전남 해남의 농가들과 10~11월 햅쌀 20㎏짜리 300포대(1200만원 상당)를 구매하기로 약정했다. 이강(70) 들불동우회 회장은 “사실상의 유가족인 소화자매원의 수녀님들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작은 부조라도 해야 선종하신 신부님께 면목이 설 듯하다”고 말했다. 들불동우회는 광주·전남 최초의 노동자 야학인 들불야학의 교사(강학)와 학생(학강) 출신 8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민간단체다.
들불동우회가 이런 결정을 한 까닭은 조 신부가 들불야학 창립에 결정적인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들불야학 창립을 주도한 최기혁(58)씨는 “이강 선배의 부탁을 받은 조 신부님이 광천동 성당의 오미카엘 신부를 찾아가 설득해 1978년 6월 들불야학이 광천동 성당교리강습실에서 야학당을 열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들불야학 교사와 학생들은 5·18항쟁 때 <투사회보>를 제작하는 등 5·18항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했고, 항쟁 전후로 7명이 세상을 떠났다.
“쌀 화환을 받으라”고 한 조 신부의 유지엔 ‘농민들에 대한 깊은 사랑’이 스며 있다. 조 신부는 1977년 ‘함평고구마 피해 사건’이 발생할 무렵 광주 계림동 주임신부를 하면서 ‘피해보상대책위원회’가 그해 4월22일 광주시 계림동 성당에서 1천여명의 농민들이 기도회를 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후 ‘함평고구마피해보상투쟁’은 농민운동사에 큰 획을 긋는 ‘역사’가 됐다. 이강 회장은 “조 신부님은 ‘오월의 사제’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은 노동자·농민운동을 적극적으로 ‘민중운동’의 큰 어른이셨다”고 강조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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