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전남대 철학과 강사 자본주의 너머의 사회를 그리는 불충분한 서술 말고는 마르크스가 달리 제시해준 것은 없다고 불평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1871년 프랑스 내전 당시 71일 동안 존속했던 민중적 자치정부 파리코뮌을 두고 하는 말이다. 마르크스는 <프랑스 혁명사 3부작>이라 불리는 일련의 저작을 통해 공동체의 구체적인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자본의 욕망이 갈기갈기 찢어버린 사람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든 다시 엮어 보려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정도는 들여다봐야 할 텍스트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체, 즉 코뮌은 아직도 가장 오래된 우리의 미래적 공동체다. 코뮌은 모든 국가권력을 민중에게로 이전시킨 민중적 자치정부를 만들어냈다. 코뮌은 국민소환제도를 도입하여, 형식적 대의민주주의에 쐐기를 박았다. 행정과 입법기관을 장악하는 한편, 사법 관료 선출제를 통해 국가권력에 굴종하는 사법부를 끝장냈으며, 모든 교육기관을 민중에게 무상으로 개방했다. 그뿐만 아니다. 코뮌은 생산자들의 공동운영에 근거한 협동조합의 조직화로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해냈다. 정치, 경제, 사법, 교육 등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혁명적 조처를 이뤄낸 코뮌을 두고 마르크스는 ‘민중에 의한, 민중을 위한, 민중 자신의 사회생활의 탈환’이라고 적는다. 갑작스레 마르크스와 코뮌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코뮌이 최근 우리 사회에서 마을의 이름으로 회귀하고 있는 듯한 인상 때문이다. 마을 만들기 운동이 내거는 목표들을 보라.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경제적 양극화를 극복할 대안 경제를 모색하는 것, 한국사회의 급속한 근대화로 인해 파괴된 공동체적 가치를 재건하는 것, 권력의 지방분권화를 통해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것. 마을 만들기 운동이 표방하는 목표로만 보자면, ‘마을’을 21세기의 ‘코뮌’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공동체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일군의 연구자들은 마을 만들기 운동이 당분간 한국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시민운동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전국 지자체별로 마을 만들기 운동이 활성화되면서, 성공사례도 심심찮게 보고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광산구가 마을 만들기 운동을 가장 선도적이고 모범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같다. 광주엔지오(NGO)시민재단?광주마을학교?광주시민자유대학은 마을의 이론적 틀을 구축하기 위해 활발한 연계활동까지 펼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마을이 공동체를 상징하는 기호로 부상해 있는 만큼 마을 만들기 운동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할 ‘마을학’을 정립하자는 문제의식에서다. 그런데 마을학의 이론적 자원을 어디에서 끌어오는 것이 좋을까? 마을의 이론적 원천을 파리코뮌에 두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마을의 회귀를 반드시 코뮌의 귀환이라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마을 만들기 운동이 지금보다 좀 더 분명하고 구체적인 지향점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낙후한 도시의 물리적 공간을 재생하고, 로컬 푸드 마켓을 운영하며, 공동 육아와 공동 텃밭 가꾸기를 통해 주민들의 소통네트워크를 활성화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마을의 철학적 기초를 다지기 위해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다양한 공동체로부터 우리가 참조할 만한 자원들을 두루 섭렵할 필요가 있다. 마을 운동의 역사적 자원으로 소환되곤 하는 상호부조니, 두레니, 품앗이가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다. 이상이 높으면 현실이 초라해지기 십상이고,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클수록 포기와 변질의 위험도 커진다. 그러나 버거운 이상이라도 현실을 부정하는 운동 속에서 제 모습을 갖춰가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을 열심히 부정하면서 뭔가 새로운 대안들을 찾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더 멀리 나서보자, 우리의 오래된 미래가 마을의 이름으로 도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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