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 짬짜미 의혹 보도 뒤…더 교묘해진 ‘꼭 집어’ 주문

성분 표시, 전화 연락 등으로 여전히 특정 업체 지정
시민단체, 관행 개선과 엄정한 수사 촉구

대전 지역 학교 급식 납품 짬짜미 의혹(<한겨레> 9월2일치 1면)이 제기된 뒤에도 학교 영양(교)사가 특정 업체 제품을 ‘꼭 집어’ 주문하는 행태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주문서에 업체명이나 제품명을 쓰지 않고 제품 성분을 풀어 쓰거나, 전화·이메일로 납품업체에 따로 연락하는 등 수법은 더 교묘해졌다.

19일 <한겨레>가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eaT)에 등록된 대전 지역 학교들의 10월치 급식주문서(현품설명서)를 확인해보니, 상당수 학교가 업체와 제품 이름을 직접 표기하는 대신 제품의 성분 함량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식으로 여전히 특정 제품을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달 중순 대전 ㄱ학교가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에 올린 10월치 급식주문서의 고추장 주문을 보면, ‘국산쌀 24%, 고춧가루 12.48%, 태양초 6.09% 이상, 우리쌀로 빚은 고추장’이라고 씌어 있다. 확인 결과 이 함량 고추장은 ㅈ사 제품이 유일했다. ㄴ학교도 인스턴트 사골국물을 주문하면서 ‘한우사골 9.75%, 한우모듬뼈 9.75%, 한우탕갈비 8.4%, 정제수 72.1%, 무항생제한우곰탕, 2kg’이라고 썼다. 제품명을 쓰진 않았지만 사실상 특정 제품을 ‘꼭 집은’ 것이다.

급식주문서와 달리 납품업체에 따로 연락해 특정 제품을 직접 주문하는 편법도 등장했다. 한 대전 지역 급식 납품업체 관계자는 “10월치 급식재료 납품 전 한 초등학교 영양사가 전화해 특정 업체 것을 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ㄷ학교는 애초 학교급식 전자조달시스템에 등록한 주문서와 다른 주문서를 만들어 납품업체 쪽에 이메일로 보내기도 했다. 따로 보낸 주문서의 비고란에는 제품별로 업체를 지정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주문 제품에 대한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고 영양사와 학부모 대표가 급식재료의 기초가격을 조사해 평균치를 게시해야 한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학교 누리집 등에 영양(교)사 작성한 급식주문서도 공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전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전교조 대전지부학교 등은 19일 기자회견을 열어 입찰 담합, 학교, 교육청, 영양사 협회 사이의 유착 의혹 등을 제기하며, 증거물로 교육청의 공문(사진)을 제시하기도 했다.

대전 각 학교에 발송되기 전 납품업체 관계자에게 전달된 급식 납품 관련 공문 사진 대전 경실련 제공

지정배 전교조 대전지부장은 “교육청이 급식재료 납품 관련 공문을 각 학교에 보내기 전에 사진을 찍어 납품업체에 보낸 정황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교육청이 지난 2월 23일자로 일선 학교에 보낼 예정이었던 공문이 하루 전 납품업체 쪽에 유출됐다는 것이다. 실제 납품업체가 휴대폰으로 미리 전달받은 공문 사진을 보면 시행 날짜와 접수 번호 등이 빠져있다. 이광진 대전경실련 기획위원장은 “아직 정식 공문도 아닌 상태로 납품업체에 전달된 셈으로, 교육청이 사실상 급식 업체와 내통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영영사와 급식업체간 유착 의혹도 제기됐다. 지정배 전교조 지부장은 “한 납품업체의 홍보 영양사가 지난 여름방학 때 대전의 영양(교)사 10여명과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납품업체들이 영양사협회에 매달 후원금을 냈다는 소문 등 급식 관련 모든 의혹에 대해 검·경은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예린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