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 제주해군기지 앞 미사천막에서 생명평화미사가 열렸다. 천주교는 5년째 날마다 생명평화미사를 열고 있다.
“평화를 빕니다.”
김동건 신부(인천 도화동성당)가 선창하자 생명평화미사에 참여한 수녀와 신자 7명이 따라 외쳤다. 미사는 “참된 평화를 이루게 하소서”라는 ‘제주평화의 섬 실현을 위한 기도문’ 낭송으로 이어졌다. 2011년부터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시작된 천막미사는 해군기지 반대운동의 상징이 됐다.
16일 오전 10시 청명한 하늘 아래 제주 서귀포시 강정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노랗게 익은 감귤과 아득히 보이는 수평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한라산 등 전형적인 제주의 가을 풍경이었다.
5년 전부터 휴가 때마다 강정마을에 오는 김 신부는 “주민, 지킴이들과 연대하면서 위로하고 위로를 받는다. 구상권 철회가 우선돼야 한다”며 “하지만 해군기지 건설과 완공에 무기력함을 느낀다. 주민들이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미사가 열리는 맞은편 해군기지 울타리 앞에 나붙은 ‘해군기지 결사반대’, ‘구상권을 철회하라’ 등 각종 깃발과 펼침막 사이에 붙은 주민들의 호소문이 눈길을 끈다.
“평생을 고기잡이로, 귤 농사로 살아온/마을 사람들이 눈물로 호소합니다/마을을 잃고 싶지 않다고, 바다를 잃고 싶지 않다고…”
호소문 앞에선 2011년 11월 서울에 살다 강정마을에 온 오철근(70)씨가 이날로 858일째 삼보일배를 하고 있었다. 상복을 입은 채 매일 오전 2시간씩 삼보일배를 하는 오씨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대규모 촛불집회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작은 시민운동이 쌓여서 큰 물결을 이룬 것이다”며 “잘못된 것을 인정하면 노예가 된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강정마을에 온 퀘이커교도 오철근(70)씨가 16일로 858일째 제주해군기지 앞 도로에서 삼보일배를 하고 있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지킴이들을 중심으로 해군기지 정문 앞에서 인간 띠 잇기와 율동이 이어졌다. 제주해군기지는 2007년 4월 강정마을 유치가 결정된 뒤 주민들의 치열한 반대 속에 10년 만인 지난 2월 완공됐다. 물 좋고, 벼 좋아 제주 제일이란 뜻으로 ‘‘일 강정’이라고 불리던 강정마을이 제주도 최대의 군사기지로 바뀐 것이다.
게다가 해군은 지난 3월 주민과 지킴이들의 반대로 기지 건설이 지연됐다며 강정마을회 등 5개 단체와 개인 116명(주민 35명 포함)을 상대로 34억5천만원의 구상권을 청구하면서 또다시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사실상 ‘구상금 폭탄’을 마을에 터뜨린 셈이다.
주민 김종환(60)씨는 “해군기지가 완공되니 패배감이 몰려 왔다. 10년 동안 싸우면서 완전히 탈진한 상태인데 갑자기 해군이 구상권 청구소송을 했다고 하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했다. 하우스 감귤 500평과 노지 감귤 1천평을 재배하는 김씨는 “구상권 때문에 아무 일도 못 하고 있다”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기지가 완공됐지만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구상권 청구에 반발해 지난 4월 해군기지 정문 앞에 만든 천막마을회관에서 만난 조경철 마을회장은 “구상권 청구는 정부의 보복이다. 주민들한테는 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에서의 거부감과 울분, 건설을 막아내지 못했다는 체념 등이 뒤섞여 있다”고 분노했다. 1천여평 규모의 하우스 한라봉 감귤을 재배하다 반대투쟁으로 관리를 못 해 피해를 입은 조 회장은 ”구상권 소송 대상자가 아닌 주민들 중에는 기지를 받아들이자는 쪽도 있다. 정부가 건설 찬반으로 주민들을 갈라치고, 구상권으로 또다시 편가르기 하는 이게 정상적인 나라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한 주민은 “구상권 문제 때문에 적금을 해지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이러려고 반대운동을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한숨을 쉬었다.
수년 동안 집집마다 나부꼈던 ‘해군기지 결사반대’라고 적힌 노란 깃발들도 상당수 사라졌다. 빛바랜 깃발이 간간이 눈에 띌 뿐이다. 김아무개(41)씨는 “이게 국가가 국민에게 할 수 있는 행동이냐. 울화통이 터져서 참을 수가 없다. 체념하는 주민들도 마음 속에 울분은 다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제주해군기지가 건설사업에 착수한 지 햇수로 10년 만인 지난 2월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완공됐다.
마을회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도움을 받아 법적 다툼을 준비하고 있다. 고권일(54) 마을회 부회장은 “왜 우리만 손해 보면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민들은 분노와 우울증 둘 다 가지고 있다. ‘가만히 있었으면 손해는 안 봤을 텐데…’하는 생각도 한다. 이런 상태로는 공동체 회복은 꿈도 못 꿀 것”이라고 말했다.
주민 동의 없이 절차적 정당성을 무시한 채 밀어붙인 국책 사업이 결국 지역 공동체를 파괴했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부서지고 상처 입은 강정마을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는 ‘구상금 청구 철회’ 등 정부의 전향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글·사진 허호준 기자
hojo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