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강제 징용의 시간을 생생하게 회고록으로 남긴 이상업씨.
“삶의 끝자락에 흔적이라도 남길 수 있게 됐네.”
일제 강점기 때 강제 징용을 당해 후쿠오까 미쓰비시머트리얼(옛 미쓰비시광업) 가미야마다 탄광으로 끌려갔다가 탈출했던 이상업(88·왼쪽·전남 영암군)씨가 쓴 회고록 <사지를 넘어 귀향까지>가 나왔다.
1990년 ‘광복 45돌 강제징용 수기 공모전’에서 뽑혀 <전남일보>에 56차례 소개됐던 내용을 묶은 것이다. 이국언 근로정신대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2007년 어르신을 처음 만나 구술을 듣다가 끌려갔던 미쓰비시 탄광의 기억을 살려 그린 그림(오른쪽)도 책에 넣었다”며 “강제징용 피해자가 직접 쓴 수기는 매우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이상업씨가 일제 강점기 때 끌려간 일본 미쓰비스 광업 탄광에서 발생한 폭발사고를 회상하며 그린 스케치.
이씨는 16살때 ‘영장’을 받고 끌려갔다. 일제 징용령엔 만 17살 이상의 남자를 동원하도록 돼 있었지만, 무시되었다. 이씨의 아버지는 “뼈도 굵지 않은 어린 자식을 어떻게 징용에 내 보내느냐”고 항의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탄광 생활은 그에게 “지옥”이었다. 지하 1500m 막장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하루 15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렸다. 이씨는 “차라리 죽는 것이 부러울 정도였다. 그러면 고통에서 해방되니까….”라고 회고했다. 이씨는 두 번의 탈출에 실패한 뒤 세번째 성공했다. 45년 해방 이후 귀향한 이씨는 33년 동안 교사로 재직했다.
이씨처럼 미쓰비시 산하 업체에 동원된 조선인 징용 피해자 10만여명은 임금을 한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쓰비시머트리얼은 지난 6월 중국인 강제노동 피해자 3765명에게 공식 사죄하고 1인당 10만 위안(약 1800만원)씩을 지급했다. 이국언 공동대표는 “일본 정부와 기업은 일제 때 일본 국민으로서 조선인을 동원했다는 이유로 보상하지 않고 있다. 국적에 따라 강제 노동의 대가마저 차별받고 있는데도, 한국 정부는 무심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이국언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