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연합회 회장과만 10여분 화재현장 둘러보고 돌아가
“자기가 아무리 힘들어도…” “이럴 거면 왜 왔나” 싸늘
시민행동은 “퇴진” 피켓시위…일부선 “파이팅” 환호
1일 오후 1시 40분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에서 박 대통령이 10분 만에 서문시장을 떠나자 4지구 상인들이 취재진을 향해 박 대통령을 거세게 비난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큰 불로 점포 679곳이 잿더미로 변한 대구 서문시장을 1일 박근혜 대통령이 찾았다. 하지만 그동안 박 대통령을 따뜻하게 맞아줬던 서문시장 상인들의 반응은 무관심하거나 싸늘했다. 박 대통령은 상인연합회장 등의 현장 안내를 받았고 화재로 점포를 잃은 상인들을 만나지 않고 별다른 말 없이 10분 만에 서문시장을 떠나 상인들이 반발했다.
박 대통령은 1일 오후 1시30분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에 도착해 불에 탄 4지구를 10분 동안 둘러봤다. 상인 20여명이 박 대통령에게 “파이팅”을 외치며 환호를 했다. 나머지 대부분 상인들은 박 대통령의 방문에 무관심했다. 서문시장에 있는 점포는 4600개가 넘는다.
박 대통령이 서문시장에 왔다는 소식을 뒤늦게 전해들은 4지구 상인 50여명이 몰려들었다. 한 상인은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박 대통령을 향해 “화재민들 한 번만 보고 가세요”라고 말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예”라고 대답한 뒤 바로 승용차에 올라 서문시장을 떠났다. 화가 난 4지구 상인들은 취재진 앞에서 박 대통령을 비판하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날 박 대통령은 상인들 중에서는 김영오 서문시장 상가연합회 회장과만 화재 현장을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김 회장에게 “어려울 때마다 찾아왔던 곳인데 이렇게 돼서 안타깝다. 지원할 수 있는 만큼 지원하겠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1일 큰 화재가 발생한 대구 서문시장을 방문,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4지구 상인 도기섭(63)씨는 “대통령이라는 분이 오셨으면 피해 상인들과 대화 한 마디는 하고 가야하는 것 아니냐. 이럴 거면 도대체 뭐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비판했다. 4지구 상인 최유연(75)씨는 “대통령이 그래도 상인들 모아놓고 죄송하다고 하고, 뭘 어떻게 하겠다고 말은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그래도 경상도 대통령이라 우리에게 뭐라도 하나 약속하고 갈 줄 알았는데 이럴 줄 몰랐다”라고 혀를 찼다.
4지구 상인 정성분(68)씨는 “대통령 온다고 해서 두시간 기다렸는데 대통령은 아무 말도 없이 4지구만 한 바퀴 둘러보고 가버렸다. 아무리 자기가 힘들어도 그렇지 우리한테 이렇게 하면 안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 3대 시장으로 꼽히는 대구 서문시장은 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맞을 때마다 자주 찾았던 곳이다. 박 대통령이 태어난 곳(대구 중구 삼덕동1가 5-2)과는 서쪽으로 1㎞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서문시장 상인들은 박 대통령이 올 때마다 늘 환호를 보냈다. 그런 서문시장 상인들이 이날 처럼 박 대통령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인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1일 오후 1시30분께 대구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옆 동산네거리에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박근혜 퇴진’을 외치고 있다. 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
대구의 85개 단체가 연대한 ‘박근혜 퇴진 대구시민행동’은 이날 긴급성명을 내어 “서문시장 방문을 과거처럼 위기 극복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것을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50여명은 이날 박 대통령의 서문시장 방문에 맞춰 서문시장 옆 동산네거리에 나와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서창호(43) 인권운동연대 상임활동가는 “화재로 큰 피해를 입은 서문시장 상인들에게 사과도, 아무런 지원책도 내놓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방문한다는 것은 정치적 행위로 밖에 비치지 않는다. 지금 박 대통령이 퇴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데 이런 식의 방문은 진정성도 없고 상인들을 정략적,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행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라고 비판했다.
대구/김일우 기자 cool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