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평촌동 기성초등학교 길헌분교장 학생들이 20일 수업을 마치고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있다.
대전 도심 교육청에서 차로 40분. 추수 뒤 을씨년스런 논밭 사이로 연노란색 조그만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대전 서구 기성초 길헌분교다. 평촌1·2·3동과 오동에 사는 22명의 꿈이 자라는 곳이다. 이들은 두 학년씩 묶은 복식 학급 3곳에서 공부하고 뛰논다. 특수학생 3명은 따로 수업을 받는다.
1964년 길헌초등학교로 문 연 학교는 지금 폐교 위기에 놓여 있다. 대전시교육청은 길헌분교를 내년 2월28일자로 폐교하는 내용을 담은 ‘대전광역시 시립학교 설치 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지난 5일 입법 예고했다. 교육청은 두 학년을 묶은 ‘복식학급 수업’을 폐교 이유로 꼽았다.
지난 20일 이곳에서 만난 오준혁(12)군은 생각이 다르다. “학생 수가 적으니 수업 시간에 모두가 주인공이죠. 5학년 동생들과 함께 수업받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학생들은 ‘학교를 지켜 주세요’, ‘학교가 사라지면 행복하지 않아요’ 등의 글로 폐교에 반대했다.
길헌분교 학생들이 학교 폐교에 대한 생각을 쓴 글들
길헌분교 학부모와 지역 주민도 같은 생각이다. 모든 학부모(18가구)가 폐교 반대 서명을 했고, 지난 16일 지역 주민과 ‘길헌분교 통폐합 저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도 꾸렸다. 학부모들은 폐교되면 통학 거리가 배 이상 늘고, 주민들은 공동체가 사라진다며 폐교에 반대하고 있다.
길헌분교 학부모와 지역 주민, 동문 등이 지난 20일 길헌분교에서 <한겨레> 기자와 만나 폐교에 대한 의견을 말하고 있다.
교육청의 밀어붙이기식 태도도 문제다. 교육청과 학교는 지난 10월17일 알림장을 통해 처음으로 학부모들에게 폐교 사실을 알렸다. 대다수가 참석하지 않은 5차례 학부모·주민·동문 설명회가 의견수렴 절차의 전부였다. 하지만 주민 설명회는 본교가 있는 기성동 주민자치위원회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뒤늦게 사실을 안 폐교 대상 주민들은 지난 8일 교육청에 제대로 된 주민 설명회를 요구했지만, 교육청은 거부했다.
학부모 백성진(35·여)씨는 “교육청이 작은 학교를 살리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유예 기간도 주지 않은 채 학생 수가 줄었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경제 논리로만 무조건 폐교를 밀어붙이고 있다. 지난 1일 설동호 교육감 면담을 신청했지만 묵묵부답이다. 철거민같은 비참한 기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환봉(71·평촌 1동 통장) 대책위 대표는 “50여년 전 주민들이 부지를 내주고 직접 돌을 날라 만든 학교다. 지역의 미래인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 공동체도 함께 무너진다”고 했다.
길헌분교 통폐합 저지 대책위원회가 21일 대전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학교 통폐합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승식 대전교육청 학생수용담당팀 사무관은 “이미 5차례 설명회를 통해 학부모·주민·동문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다. 모든 학부모가 반대하더라도 폐교 추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글·사진 최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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