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복지공동체 여민동락 대표 살림꾼 내 휴대전화 속 어머니 이름은 ‘세상의 전부’다. 어머니는 내게 ‘존경과 존엄의 상징’이다. 철석같이 그리 믿고 살았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수감생활을 할 때 감옥에 찾아오신 홀어머니는 다른 부모들과는 다르셨다. 단호하셨다. “애미 생각한답시고 행여라도 전향서인가 서약서인가 그런 거 쓰지 마라 잉. 다 살고 나온나 잉. 데모허다가 억울하게 죽은 애기들도 허다허단디 넌 살아 있응께 되흶지야.” 이유도 가차 없었다. “책임은 다 니가 지고 꼿꼿하게 징역살어라. 글고 딴 사람들은 나갈 수만 있으면 다 나가라고 해라.”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감옥 마룻장 위에서 몇 년을 온기없이 지내는 아들을 생각하던 어머니는 겨울이면 보일러를 꺼놓고 냉방에서 지내셨단다. 고등학생 운동으로 퇴학과 구속을 당해 25년 만에 명예졸업장을 받을 때도 그랬다. “어린 놈의 손에 수갑 채우고 밧줄로 묶어 경찰차에 태우는디 내가 환장허겄드랑께. 면회만 가믄 혀를 꽉 깨물었다잉. 어린 새끼 앞에서 눈물 안 보일라고…. 글고 면회 끝나믄 교도소 앞에서 펑펑 울다 왔당께.” 어머니는 그런 분이셨다. 학식은 없었지만 덕망은 높으셨고, 가진 것 없었지만 기개는 곧으셨다. 스물 몇 살쯤 됐을 때다. 어머니 손을 잡고 추억담을 나눈 적이 있다. “어무이, 근디 왜 나 초등학교 때 매번 첫 방아만 찧으믄 광목천 쌀 차두(자루) 네 개를 여기 저기 갖다 놓으라고 했다요?” “동네에서 가장 가난했던 집들이어서 그랬제야.” “우리집도 힘든디 왜 어무이가 그 집들을 챙겼다요?” “뭐시냐, 교회만 가믄 이우제(이웃)를 돕고 살라고 헌디, 우리도 힘든께 그게 말처럼 된다냐. 그래서 첫 방아 찧으믄 그 때 딱 나눴제. 그 때를 놓치믄 일년 내내 못하고만께.” “근디 왜 그걸 한밤중에 갖다 주라고 했다요?” “그거 쪼까 줌서 생색내고 주믄 쓰겄냐?” 어머니는 ‘철학자’였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한글을 겨우 깨쳤던 분이라곤 믿겨지지 않았다. 지성이란 다른 게 아니다. 더불어 함께 사는 관계능력과 나보다 더 가난한 약자를 위해 눈물 흘릴 줄 아는 나눔과 배려능력이 바로 지성의 전부다. ‘마을에서 어르신 한 분을 잃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표어를 신념으로 갖게 된 것도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서다. 그런데 어쩌랴. 91살 노모가 요양원 생활을 하신다. 기개는 사라졌고, 판단력은 흐릿해졌다. 하루에도 십 수번씩 아들을 찾으시나, 자식들은 이미 지쳐가는 듯 보인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 쉽게 지나칠 말 아니다. ‘세상의 전부’라고 했지만, 감당 못 할 피로도 앞에 그 말마저 헛말이 됐다. 스트레스로 이명이 온 지 오래고, 어머니의 변한 모습에 낯빛 달라지며 한숨 쉬기 일쑤다. 저마다 중풍과 치매 없이 품위를 지키다 가시면 얼마나 다행이겠는가. 100세 시대, 병든 부모 앞에서 무기력해지는 자식들이 많다. 집이 제아무리 좋다고 한들,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아 자식들 간 불화가 이어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멀리 사는 자식들은 이래저래 미안해지고 가까이 사는 자식들은 부담이 커지고…. 집처럼 편안하게 지내실 수 있고 가족보다 ‘전문적인 돌봄’이 가능한 요양시설이라면 오히려 낫다. 텔레비전만 보게 하고 침대에서 누워있게만 하는 시설은 피해야 옳다. 가능하면 움직이게 하고 스스로 해결하게 돕고 잔존능력을 쓰게 하는 곳이 좋은 시설이다. 어떻게 해야 요양원에서도 어머니는 자식에게 세상의 전부가 될 수 있을까. 뾰족한 방법은 따로 없다.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늙는다는 것, 병든다는 것, 삶이 그렇다는 것, 그럴수록 더 다정하게 말 건네고, 더 자상하게 손길 나누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는 것. 그리고 ‘100세 시대 부모 봉양법’을 미리 학습하고 준비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어머니의 아픈 노후는 내가 살 미래다. 나는 어떻게 하면 생의 끝에서조차 아이들에게 존경과 존엄의 상징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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