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10월 사건의 희생자인 정재식(사망 당시 27살)씨의 아들 정도곤(68)씨가 지난달 13일 대법원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부산 사하구에 사는 정도곤(68)씨가 지난 28일 아침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나날이 서울 서초구에 있는 대법원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정씨는 “대구 10월 사건은 나와 가족에게 평생토록 고통을 줬다. 당시 경찰은 재판도 없이 아버지를 사살했다. 이런 사실을 과거사정리위원회가 확인했는데도, 대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국가에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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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 3월 “대구·칠곡·영천·경주 등 4곳의 주민 59명이 1946년 10월부터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사이 경찰과 군인 등에 재판 없이 사살됐다.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일 이후부터 한국전쟁 사이 대구·칠곡·경주 등 3곳의 주민 46명이 대구 10월 사건과 관련해 경찰 등에 끌려가 사살됐다”고 결정했다. 정씨의 아버지 정재식(당시 27살)씨는 그 46명 가운데 1명이다.
정씨는 진실화해위원회 결정 뒤 정부의 후속 정책을 기다렸지만, 정부는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정씨는 2011년 4월 국가를 피고로 해 부산지법에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다. 이듬해 5월 어머니 이씨를 청구권자로 한 대리 소송을 따로 제기했다. 부산지법과 부산고법은 모두 진실화해위원회의 확인을 받아들여 정씨 아버지가 피해자임을 인정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엇갈렸다. 대법원 2부는 정씨 어머니의 재판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확인을 인정해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하지만 정씨의 재판을 맡은 대법원 3부는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당시 대법원 3부는 “진실화해위원회 결정서에 포함되지 않고 ‘첨부 자료’에 기록됐기 때문에 정씨의 아버지를 희생자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 이유를 밝혔다. 소송의 원인이 된 피해 당사자가 각각 아버지와 남편으로 같은 사람인데,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와 달리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서 첨부 자료에 정씨 아버지와 함께 피살자로 기록된 박아무개(당시 30살)씨 등 5명의 유족은 지난해 5월 대법원에서 일부 승소해 국가배상이 확정됐다.
지난 8월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한 뒤 정씨는 지난 10월 대법원에 재상고심을 청구했다. 정씨는 “아버지가 경찰에 위법하게 사살된 뒤 우리 가족에게 찍힌 ‘빨갱이’ 낙인 때문에 평생 숨죽이고 살았다. 진실화해위원회가 희생자로 판명했는데도 국가는 여전히 아버지의 죽음을 외면하고 있다. 이제라도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것을 인정해달라”고 울먹였다. 부산/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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