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광주시의회 본회의에서 전국 최초로 일제강점기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 조례가 제정된 뒤 양금덕 할머니와 시민들이 조례안을 대표 발의한 김선호 의원과 서정성·강은미 의원에게 감사의 장미꽃을 건넨 뒤 함께 사진을 찍었다.
김정주(85·서울시 송파구) 할머니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일본에 갔다 왔다는 이유에서다. 침략전쟁을 벌인 일제는 일손이 부족해지자 김정주 할머니 같은 10대 소녀들을 근로정신대로 강제동원해 일본 군수공장에 끌고 가 일을 시켰다. ‘근로정신대’에 붙은 ‘정신대’라는 명칭이 김 할머니에게 ‘주홍글씨’가 됐다. 일제가 일본군 위안부를 동원하는 과정에서 쓴 용어가 ‘정신대’였기 때문이다.
김정주 할머니는 큰아이가 세살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남편과 갈라섰고, 상경했다. “내 말을 안 믿어줘. 남편이 ‘더러운 년, 더러운 년’이라고 합디다….”
김 할머니는 전남 순천남초등학교 6학년이던 1945년 2월께 ㈜후지코시 강재공업 공장으로 강제동원됐다. 열네살 나이에 강제노동에 혹사당했지만, 임금 한 푼 손에 쥐지 못했다. 해방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정신대’ 출신이라는 차가운 시선만 쏟아졌다. 남편과 헤어진 뒤 홀로 어린 아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행상 등을 하며 평생 곤궁하게 살았다. 사업에 실패한 아들은 돌 지난 손주를 맡긴 채 지금은 연락조차 끊긴 상태다. 기초생활 수급자인 김 할머니는 엘에이치가 제공한 저소득층 전셋집에서 손자(23)와 살고 있다. “내 청춘은 일본 갔다 왔다는 것으로 없어져분 것이여….”
김 할머니에게 서울시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 여성근로자 지원 조례’는 그야말로 든든한 후원군이자 버팀목이다. 서울시는 2013년 9월 조례를 제정해 이듬해 1월부터 시행했다. 일제강점기 때 14~15살의 나이에 일본 군수공장에 동원된 여성근로정신대 출신 할머니들이 조례 지원 대상이다. 서울시는 이들에게 월 30만원의 생활보조금을 지급하고, 진료비(본인부담금 중 월 30만원 이내)도 지원하고 있다. 서울시의 이 조례 수혜 대상은 27명이다. 김정주 할머니는 “정말 감사하다. 조례 덕분에 병원에도 다니면서 살 수 있게 됐다. 정말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는 정신대라는 명칭 때문에 사회적 편견에 시달리지만, 정작 정부나 사회에선 다른 일제강점기 피해자와 달리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중의 피해’를 받은 셈이다. 1944년부터 45년 초까지 미쓰비시중공업과 후지코시강재, 도쿄아사이토방적 등 3개 기업에 강제동원된 ‘소녀’만 전국에서 1600여명에 달한다. “돈도 벌 수 있고, 여학교도 다닐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이들은 임금 한 푼 받지 못했다.
이들에게 따뜻한 손을 처음으로 내민 곳이 광주광역시였다. 광주시는 2012년 3월 ‘일제강점기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한 뒤 그해 7월부터 시행했다. 국가가 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 대해 아무런 지원책을 마련하지 않고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지방정부 조례가 그 틈을 메운 셈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이 조례 통과로 “첫 봄”을 맞은 느낌이었다. 현재 광주에선 18명이 이 조례 혜택을 보고 있다.
광주에서 시작된 근로정신대 지원 조례는 다른 지방정부로 확산됐다. 전남도(2014년 1월, 40명)와 서울시, 경기도(2014년 10월, 34명), 인천시(2016년 1월, 7명)에 이어 전북도(22명)도 내년 1월부터 지원 조례를 시행한다. 대부분 매달 생활보조비 30만원과 병원 진료비(월 본인부담금의 20만~30만원 한도), 사망 때 장제비나 조의금으로 100만원 지급 등이 주 내용이다.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갔던 피해자가 많은 대전시, 충남도 등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을 위한 지원 조례가 아직 없다.
양금덕(86·광주시 서구 양동) 할머니는 “그 조례가 생긴 뒤 가슴속 분노가 절반은 풀렸어. 귀한 사람으로 대접해주는 게 기쁘고 감사해”라고 말했다. 이국언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는 “근로정신대 피해자 할머니들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이 많아 생활비 지원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큰 효과는 조례가 할머니들에게 ‘이제 더 이상 숨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 지원 조례는 이들 할머니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벌이는 손해배상소송과 사과 촉구 싸움에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정부가 무관심한 상태에서 조례마저 없다면 일본 기업들도 근로정신대 피해배상 소송을 의식할 리가 없지요.” 이국언 공동대표는 “자치단체의 지원 조례가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를 우리 사회가 인식하고 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은 일본 법정에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1999.3~2008.11)에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청구권이 소멸됐다’는 이유 때문에 패소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지금은 국내 법원에서 근로정신대와 관련해 6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 등 5명은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6월 광주고법에서 승소해 대법원에 계류중이다. 박해옥(86·광주시 남구 봉선동) 할머니는 “지금도 가끔 일본 공장에 미군 폭탄이 떨어져 기숙사에 불이 올라왔던 꿈을 꾼다. 이불 속에서 벌벌 떨며 부모님과 큰언니를 떠올리며 많이 울었다”며 “지금은 몸을 혼자서는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아프다. 내가 죽기 전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하루빨리 매듭지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