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주차의 ‘말도마요~ 18ⅹ18’ 기획전 전시 작품.(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치킹, 계란개판, 눈물바다, 대한민국)
“그래 봐야 닭이지.”
23일 점심시간, 대전 대흥동의 문화공간 ‘주차’(parkingtoast.modoo.at)를 찾은 관람객들이 썩은 미소를 날렸다. 이들은 근처 사무실에 근무하는 직장인들로, 같이 식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면 주차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는 호강 한다고 했다.
주차가 연 전시회는 2017 신년기획전 ‘말도 마요~ 18ⅹ18’이다. 가로·세로 18㎝ 크기의 사회를 풍자한 작품을 내걸었다. ‘그래도 닭’이라고 평가받은 그림은 박정용 작가가 출품한 ‘치킹’(Chinking)이다. 뉴햄프셔종으로 보이는 닭이 왕관을 쓰고 도도한 눈빛으로 관객을 쳐다본다. 관객들이 ‘썩소’를 날리는 까닭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아무개(36·보험사 근무)씨는 “닭 하면 그분이 떠오른다. 치킹을 보니 관을 쓰고 왕이 됐다고 뻐겨도 닭은 닭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작가는 제작 동기를 이렇게 밝혔다. “올해가 정유년 닭의 해라서 왕관을 쓴 닭을 그렸어요. 예부터 닭의 볏은 승진과 입신출세를 의미합니다. 험난한 시국을 사는 모든 이들이 왕처럼 잘 살기를 바랍니다.”
물에 잠겨 슬픈 표정의 말 등에 닭이 올라타고 있는 작품도 눈길을 끈다. 박대규 작가의 ‘눈물바다’다. 지난해 청마 해에 열린 ‘말도 마요~’ 기획전에서 세월호의 뱃머리를 닮은 말머리가 바다에 잠기는 작품에 이은 연작이다. 그는 “세월호의 밝혀지지 않는 진실 앞에 눈물 흘리는 우리를 그렸다. 우리 모두 눈물이 흘러 바다를 이룬 것 같이 슬펐던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말고 재발을 막기 위해 노력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작품같이 공간을 크고 작은 격자로 나눈 작품은 정지홍 작가가 영상으로 만든 ‘대한민국’이다. 종이 판형(절수)이 동과 서, 남과 북, 영남과 호남, 좌파와 우파, 보수와 진보, 부와 빈 등으로 나뉘어 갈등하는 우리 현실과 닮았다는 느낌을 시각화했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안현준 작가(주차 전시기획실장)도 조류 인플루엔자가 유행하면서 귀한 몸이 된 계란을 무려 한판(30개)씩이나 깨 ‘닭’ 글자를 썼다. 아무리 귀한 것도 깨지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격언을 희화화했다. 작품 제목은 ‘계란 개판’.
이 전시회는 시사성과 예술성을 모두 갖춰 ‘사이다 작품전’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주로 대전에서 활동하는 중견작가 35명이 참여해 28일까지 연다.
박석신 문화공간 주차 대표작가는 “이 기획전은 지난 한해를 풍자하는 전시회인데, 국정농단 사건으로 정치·사회적인 파문이 크고 올해가 마침 닭의 해인 데다 참여 작가들이 주제를 ‘닭’으로 정해 스스로 블랙리스트에 오르자고 요구해 닭으로 결정했다. 이 전시가 예술의 표현을 통해 시민과 공감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문화공간 주차는 4월에 30대 작가 2명을 선정해 홍보, 전시, 리플렛까지 모두 지원하는 젊은 작가 지원전, 5월19일에는 ‘미성년자는 못 보는’ 19금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매주 마지막 수요일 점심시간에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콘서트를 감상하며 토스트와 커피를 무료로 즐기는 토스트 콘서트를 올해도 이어간다. (042)254-5954.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사진 문화공간 주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