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전국 전국일반

[이야기 담담] 공부하는 시민들의 도시, 광주

등록 2017-03-08 15:47수정 2017-03-08 21:49

이야기 담담
김현
전남대 철학과 강사

소크라테스는 철학자가 등에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아무리 쫓아버려도 기필코 들러붙어 피를 빠는 곤충에 철학자를 빗댄 게 유쾌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귀찮다 싶을 만큼 질문을 던져대며 논쟁과 토론을 즐기는 철학적 정신을 등에 만큼 잘 표현해 주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주어진 대로만 살아가는 동물에게는 자신의 환경과 반성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하기에 질문이 있을 리 만무하다. 질문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문제시하는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다. 때문에 철학 한다는 것은 현실에 묻혀 차이 없는 반복만을 되풀이하는 동물적 삶을 경계한다. 등에 같은 철학적 정신으로 일상을 벼려낸다는 것은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는 소크라테스의 정신을 실천하며 산다는 것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포박된 오늘날의 대학에서는 철학뿐만 아니라 문학이나 예술도 그저 성가시기만 한 등에일 뿐이다. 살아남기 위해 이기는 것만을 최고선으로 아는 자본의 명령에 질문이란 있을 수 없다.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사고해야 하며, 사고하기 위해서는 멈춰서야 하기 때문이다. 앞만 보고 질주하는 경쟁의 도가니 속에서 한시라도 멈추면 곧바로 패자의 대열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는 학문만이 유용하기에 유용한 것이 곧 진리라는 실용주의적 믿음만큼이나 오늘날 대학 사회를 병들게 한 것도 없다. 시장으로 전락한 대학에서 비판적 사유도, 참신한 상상력도, 타인에 대한 공감적 이해도 설 자리를 잃었다. 교환가치도 환전가치도 없는 무용한 것들에 불과한 까닭이다.

광주 지역의 몇몇 학자와 시민들이 이 대안 없는 삶으로부터 출구를 마련하고자 뜻을 모았다. 민립대학을 표방하는 ‘시민자유대학’은 국가의 부름에 충실한 순종적 신체 양산을 교육의 목적으로 삼지 않으며, 교육을 몇몇 사인의 이익에 복무하는 유용한 도구로 간주하지 않는다. 가르치는 자의 권위를 앞세워 교육의 주체와 객체를 나누지 않으며, 경쟁을 부추기면서 교육을 인간의 위계화와 서열화에 복무하도록 방치하지 않는다. 이곳에 모인 시민들은 경쟁을 대체할 공존이, 차별을 넘어설 평등이, 복종과 순종을 밀어낼 자유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의 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민자유대학은 스스로의 삶을 검토할 용기를 가진 광주의 모든 시민이 캠퍼스와 강의실의 주인이 되는 열린 대학을 지향한다. 때문에 널찍하고 화려한 캠퍼스와 허락받은 자만이 출입할 수 있는 강의실에 교육을 감금하지 않는다. 제도화된 대학이 무용하다는 이유로 내다 버린 인문학을 통해 시민자유대학은 광주를 공부하는 시민들의 도시로 키워내려고 한다.

철학 하는 시민, 문학과 예술을 통해 인문학적 상상력과 공감능력을 키워낸 시민들이 많아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공부하는 시민들의 도시는 적자생존의 냉혹한 경쟁 속에 나 홀로 살아남는 것을 삶의 미덕이라 권하지 않을 것이다. 연령이나 성별, 학벌이나 계급으로 사람을 편 가르면서 불평등한 현실의 재생산을 묵인하지도 않을 것 같다. 그보다 오히려 도시 곳곳을 가르고 나누는 견고한 차별의 성벽들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지 않을까? 현실에 순응하기보다 끝없는 자기 부정을 통해 부자유하고 불평등한 사회를 어떻게 바꿔낼 것인지를 논의하는 이들을 도시 곳곳에서 만날 것 같지 않은가? 퇴근 후 술 섞인 넋두리로 고단한 하루를 위로하고 오늘 같은 내일을 되풀이하기 위해 서둘러 잠을 청하는 시민보다, 논쟁과 토론 속에서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보는 시민들이 많아지지 않을까?

시민자유대학이 지난 2월 설립 한 돌을 맞이했다. 일 년 동안 책을 붙들고 씨름했던 시민들이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촛불을 밝혔다. 시민자유대학은 공부하는 시민이 만들어가는 세상을 꿈꾼다. 촛불은 시민의 자유를 밝히는 저항이고 희망이다. 그리고 광주에는 이제 자유를 위해 촛불을 밝히는 시민들의 대학이 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전국 많이 보는 기사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1.

대전 초등생 살해 교사 “어떤 아이든 상관없이 같이 죽으려 했다”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2.

HDC신라면세점 대표가 롤렉스 밀반입하다 걸려…법정구속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3.

“하늘여행 떠난 하늘아 행복하렴”…교문 앞에 쌓인 작별 편지들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4.

대전 초교서 8살 학생 흉기에 숨져…40대 교사 “내가 그랬다”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5.

살해 교사 “마지막 하교하는 아이 유인…누구든 같이 죽을 생각”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