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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주주 낙방 29년 한 풀려 ‘평생주주’ 자청합니다”

등록 2017-03-26 19:36수정 2017-03-26 21:21

새 주주 매월 5만원어치 주식 사는 곽기종씨
새 주주 곽기종씨가 지난 22일 <한겨레> 신문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새 주주 곽기종씨가 지난 22일 <한겨레> 신문을 보며 활짝 웃고 있다.

경찰관 부친 병사로 온가족 뿔뿔이
초등학교 못 마치고 ‘야반도주’ 상경
“청계천 노동자로 전태일 삶 배워”

88년 주식대금 모았으나 신청 때놓쳐
“권력 타협 않는 언론 ‘박 파면’ 저력”
돈보다 소중한 ‘주식’ 자녀 유산으로

“29년 만에 한을 풀었습니다. 드디어 <한겨레>의 주인이 됐습니다. 하하하.”

한겨레신문사 주식을 매월 5만원어치씩 사기로 한 새 주주 곽기종(57)씨가 활짝 웃었다. 그는 이번에 ‘평생 주식’을 사려다 관련 제도 미비로 일단 10년 단위로 자동이체를 통한 주식 매입을 신청했다. 곽씨를 지난 22일 저녁 세종시 조치원읍에서 만났다.

그가 매달 5일 주식을 사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고 한다. 1988년 5월 <한겨레> 창간 당시 현장 노동자이던 그는 군사독재 정권에 저항하다 해직당한 언론인들이 국민 공모주 신문을 만든다는 소식을 듣고 힘을 보태기로 결심했다. 곽씨는 액면가 5천원인 주식을 5주 사려고 2만5천원을 모았으나 공모 기간이 끝난 뒤여서 창간주주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대신 아쉬움을 달래려고 하루도 빠짐없이 신문을 구독했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광화문 촛불집회 기사를 읽다가 옆에 딸린 ‘한겨레신문의 주주가 돼 달라’는 광고를 보고 감전된 듯 부르르 몸을 떨었다. “무릎을 쳤어요. 언제든 쉽게 꿈을 이룰 수 있었는데 주식 살 생각을 못 한 29년이 억울했어요. 물어볼 것도, 따질 것도 없이 ‘주식 사고 싶다’고 전화했죠.”

그는 처음부터 <한겨레>가 좋았다. 창간 주역인 조선일보·동아일보 해직 언론인들의 파란만장한 삶이 우여곡절 많은 자신의 삶과 다르지 않다고 여겼고, 또 <한겨레>가 걸어온 역사가 양심을 지킨 인생만큼 험한 가시밭길이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권력과 타협하지 않아서 좋아요. 다른 신문은 대충 넘기지만 <한겨레>는 좋아하는 사설부터 광고까지 다 봐요. 구독신청을 했더니 6개월간 공짜로 준다고 하기에 ‘그럼 나 안 본다’고 싸우기도 했죠. 하하하.”

그는 ‘한겨레 그림판’에 말풍선을 달아 블로그에 연재하기도 한다. 최근 기억에 남는 기사로는 지난해부터 보도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보도와 ‘박근혜 8 대 0 파면’을 꼽았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손을 맞잡고 웃는 사진이 1면에 실린 신문은 지금도 보관하고 있다.

그는 61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났다. 경찰 간부이던 아버지가 폐병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뜬 뒤 어머니와 어린 6남매가 뿔뿔이 흩어졌다. 그 역시 초등학교 졸업도 못 하고 72년 서울로 야반도주했다. 12살 그의 첫 일터는 전태일 열사가 산화한 청계천의 봉제공장이었다. 그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를 듣고 읽으며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배웠다”고 했다. 전태일은 그가 중국음식점 배달원, 호텔 벨보이, 구로공단 노동자 등을 전전하며 험한 세상을 건너는 동안 신앙이자 힘이 됐다.

그가 지금의 조치원에 정착한 것은 83년께, 가죽가공 기술을 익힌 덕에 약관 23살에 가죽공장 과장으로 스카우트됐다. 생전 처음 집을 사고 가족도 모였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가죽산업은 화학물질을 사용해 발생하는 악취 등 환경오염, 각종 질병 등 산업재해의 온상으로 분류되며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손 뗐어야 했는데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형하고 함께 87년 인천 남동공단에 가죽가공 공장을 차렸다가 다 날렸어요. 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는 실어증에 걸리셨고요.” 조치원으로 돌아온 그는 어묵을 배달하고 고물상을 했다. 슬하의 남매는 초·중학생 때 고물 수거하는 아빠를 도울 만큼 일찌감치 철이 들었다.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 청년사업가가 돼 용돈도 내민다. 그러다 우연찮은 계기에 맨홀소켓 특허를 얻어 지금의 공장을 열었다.

요즘 그는 하고 싶던 일들을 시작했다. 세종남성합창단원으로 목원대 평생교육원에서 합창 지휘를 배웠고, 4년 전에는 시인으로 등단도 했다. 세종참여자치시민연대의 든든한 활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박정희 군부독재부터 박근혜 국정농단을 겪고도 정신 못 차리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난다. 정권을 바꾸고 세상이 바르게 가는 데 힘을 보태려고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고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한겨레>는 늘 비판 기능이 시퍼렇게 살아 있어야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한겨레> 형편이 더 어려웠던 경험을 거듭하면 안 됩니다. 물론 <한겨레>가 잘해도 주식값이 오를 거라고 기대는 안 하는데, 돈보다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죠. 제가 자식들에게 남길 유산이 바로 <한겨레> 주식입니다.” 단호하던 얼굴에 다시 사람 좋은 웃음이 번졌다.

“소원이 있는데 말해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성한용, 곽병찬 기자님 계시죠? 이분들 칼럼을 정말 좋아합니다. 이분들과 소주 한잔 나누고 싶은데, 될까요?”

세종/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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