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으로 옮긴 반핵평화운동가 고 김형률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 묘소. “핵 없는 세상을 일구기 위해 삶은 계속되어 한다”는 그의 말이 비석에 새겨졌다. 한국원폭2세환우회 제공
원폭 피해자 2세로서 반핵평화운동에 헌신했던 고 김형률(1970~2005)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의 묘소가 지난 5일 부산 금정구 부산영락공원에서 경남 합천군 선영으로 옮겨졌다.
김씨의 아버지 김봉대(80)씨는 6일 “이제 나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형률이의 묘를 계속 관리하기 위해 청명한식이었던 지난 5일 조상들이 묻혀있는 합천으로 옮겼다. 나도 머지않아 아들 곁에 묻힐 것”이라고 말했다. 경남 합천은 국내에서 원폭 피해자가 가장 많이 살아 ‘한국의 히로시마’로 불리며, 김씨의 부모 역시 합천 출신이다.
김씨의 어머니 이곡지(77)씨는 일제강점기 일본 히로시마에 살다 1945년 8월6일 원자폭탄에 피폭됐다. 1970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려서부터 폐질환과 빈혈 등 각종 질병에 시달렸다. 그의 쌍둥이 동생도 태어난 지 1년6개월만에 폐렴으로 숨졌다.
김씨는 2002년 자신의 병이 어머니에게서 유전된 선천성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병은 백혈구 이상으로 면역체계가 약해지는 희귀 난치병으로, 원자폭탄에 피폭된 어머니한테서 피폭 후유증이 대물림된 것이었다.
김씨는 같은 해 3월22일 한국청년연합회 대구지부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이 피폭 후유증을 앓는 원폭 피해자 2세임을 공개적으로 밝혀, 원폭 피해자 2세도 피폭 후유증을 대물림해 앓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처음 알렸다. 그는 원폭 피해자 2세들의 단체인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으로 활동하며, 원폭 피해자 지원 특별법 제정 등 반핵평화운동에 앞장섰다. 하지만 결국 특별법 제정을 보지 못하고 2005년 5월 면역 글로불린 결핍증에 의한 폐렴으로 서른다섯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 의료 지원, 피해자 추모 기념사업 실시 등 내용을 담은 국내 첫 원폭 피해자 지원법인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지난해 5월19일에야 제정했다. 하지만 원폭 피해자 후손을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 서둘러 개정해야 한다는 요구를 받고 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터질 당시 한국인 피폭자는 10만명에 이르렀지만, 70여년 세월이 흐르며 6일 현재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국내 원폭 피해 생존자는 2400여명에 불과하다. 이들의 자녀인 원폭 피해자 2세는 현황 파악조차 되지 않는데, 한국원폭2세환우회 회원은 1300여명에 이른다.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은 “한·일 양국 정부 어디에서도 인정하지 않는 원폭 피해자 후손들의 아픔을 우리 사회가 먼저 인정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시민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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