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전남대 철학과 강사 분열과 갈등은 독이 아니라 약이다. 공정한 경쟁과 합리적 소통이 보장되는 분열과 갈등이라면, 어설픈 화해나 통합보다 더 생산적이고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같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다름이 철저하게 사유되어야 한다. “자신의 정치적 편향성을 의식하면 할수록, 자신의 미학적, 지적 진정성을 희생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많아지게 된다.”(조지 오웰) 아무런 입장과 관점을 취하지 않는 사람과는 대화나 논쟁이 애시 당초 불가능하다. 진보와 보수의 이념 대립이 낡은 정치적 프레임이라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말이 무색하게도, 우리 사회는 단 한 번도 자유롭게 비상하는 새를 허락한 적이 없다. 반공을 국시로 강요해온 나라에서 진보는 예외 없이 종북 좌파로 단죄되었고, 보수는 과거로의 퇴행만을 거듭하는 수구 반동의 정체성을 벗어난 적이 없어서다. 진보와 보수가 건강한 이념 대결을 펼친 적이 없었기에 이념적 중도 또한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나, ‘보수적 진보주의자’라는 말들은 다양한 이념의 공존을 불허하는 병든 사회에서 정치적 모리배들이 벌이는 교활한 말장난이다. 진보적 보수주의자는 그저 보수주의자일 뿐이고, 보수적 진보주의자는 진보주의자가 아니다. ‘진보의 날개만으로는 안정이 없고, 보수의 날개만으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상식의 통용이 우리 사회만큼 간절했던 곳도 없다. 때문에 진보와 보수가 제대로 된 논쟁을 펼칠 수 있는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 내려면 이념 논쟁을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도래할 미래로 인식해야만 한다. 5월9일 대선을 앞두고 무려 15명의 후보가 출사표를 던졌다. 합리적 보수의 길을 열겠다는 대선후보는 있는데, 진보의 재건을 약속하는 유력 대선 후보가 없다는 게 진기한 현상이다.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겠다는 후보도, 국민이 승리하는 세상을 가져오겠다는 후보도 진보의 터전을 다지는 데에는 별 관심 없다. 성장 보다 분배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지도 않으며, 국민을 선별적 복지의 수혜자가 아니라 보편적 복지의 권리자로 인식하지도 않는다. 재벌을 해체하고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는 약속도 없으며, 부의 독식과 세습을 뿌리 뽑을 수 있는 강력한 규제와 법안을 만들겠다는 다짐도 없다. 촛불 광장의 외침이 이들에겐 뜨거운 감자라서 그럴까?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려면, 국민이 승리하는 정치의 활로를 열어젖히려면, 한국사회를 좀먹는 구조적 적폐를 근본에서부터 사유하고, 이를 척결하기 위한 강력한 공약들을 내세워야 한다. 나라를 뜯어 고칠 의지가 있다면, 공약의 색채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이변이 없는 한 ‘두 후보 중 누가 되든 정권교체’라는 세간의 예언이 빗나갈 것 같지는 않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 맞이한 대선이 아니라서 유권자들도, 대선 후보들도 다급하고 준비 없긴 매 한가지다. 우리를 여기까지 내몬 국정농단의 주범들에겐 뉘우침이 없고, 그들의 수장을 모시는 폭민의 무리들도 여전히 건재한 듯하다. 광장의 촛불은 정권이 바뀌는 것만을 원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근본부터 새로운 나라를 원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두리뭉실한 통합이나 미래 먹거리 따위가 아니다. 나는 우리 사회가 더 많은 분열과 더 많은 갈등을 즐겼으면 좋겠다. 정치적 색채를 가지고, 논쟁을 통해 공동의 의제를 풀어가는 생산적 공론장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선거전이 본격화 되면서 개헌에 관한 논의도, 적폐 청산의 목소리도 사라져가고 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전략적 투표는 없다. 꺾여 버린 왼쪽 날개의 재건을 위해 정책적 진보주의에 한 표를 행사하는 것도 좋다. 보수 일색의 후보들이 벌이는 밋밋한 대선판엔 변혁의 열정을 품은 장미가 없다. 그러니 우리, 저 너머에서, 저기서 춤 출 준비를 하자! 저기에 장미가 있다! 장미 대선은 촛불 광장의 종착지가 아니라 또 다른 광장으로 향하는 교차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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