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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87년 5월 목숨 건 사제들의 ‘직선 쟁취’ 단식이 6월 항쟁 들불로

등록 2017-06-08 19:47수정 2017-06-09 07:20

1987년 6월 광주·부산의 기억

광주교구 신부들, 4월21일 단식 돌입
전국 교구로 확산…‘4·13호헌’ 파열구
5월엔 전국에서 첫 ‘국본’ 만들어

부산 대규모 시위중 이태춘씨 사망
노무현·문재인 인권변호사
최루탄 맞으며 거리행진 앞장

10일 전국에서 다양한 기념행사
시민성금으로 6월항쟁사 집필도

천주교광주대교구 신부들이 1987년 4월21일 광주 옛 가톨릭센터에서 4·13호헌 ‘폭거’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인환 새날출판사 대표 제공
천주교광주대교구 신부들이 1987년 4월21일 광주 옛 가톨릭센터에서 4·13호헌 ‘폭거’에 반대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김인환 새날출판사 대표 제공
“부활절 이후 첫 화요일이 ‘디데이’였지요.”

8일 오전 광주광역시 금남로 5·18민주화운동기록관(옛 가톨릭센터)에서 만난 김양래(61)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6층 윤공희 대주교의 옛 집무실을 둘러보며 1987년 6월 항쟁에 앞서 그해 4월21일 벌어진 천주교 신부들의 단식투쟁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당시 천주교광주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 간사였다.

광주대교구 소속 신부들은 4월16일 성유축성미사를 올리던 날 자연스레 만나 은밀하게 ‘저항’을 준비했다. 전두환씨가 4월13일 대통령 직선 개헌 요구를 묵살하고 당시 5공 헌법에 따라 대통령을 계속 ‘체육관식 간선제’로 뽑겠다는 ‘호헌’ 방침을 밝힌 지 사흘 만이었다. 부활절(4월19일) 이후 첫 화요일인 4월21일, 남재희·안호석·송홍철 신부 12명(뒤에 7명이 합류)은 옛 가톨릭센터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직선제 개헌을 위한 단식 기도를 드리면서’란 전단이 건물 창문 밖 금남로로 뿌려졌다.

■ 목숨을 건 단식 광주대교구 신부들의 단식농성은 직선제를 원하는 국민의 뜻에 반하는 4·13호헌 ‘폭거’에 대한 첫 집단 저항이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윤공희 대주교님이 86년 9월에 임동성당 새 주교관으로 옮기셔서 6층 옛 집무실을 단식농성 장소로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부들은 6층의 방화문 셔터를 내린 뒤, 창문에 책상을 쌓았다. 물과 이불만 들고 가 ‘목숨을 건 투쟁’에 돌입했다. 신부들의 단식농성 여파는 컸다. 신자들과 시민 수천명이 몰려와 단식 기간 9일 동안 가톨릭센터를 삥 둘러 에워쌌다. “그 때는 살벌한 때였어요. 광주대교구 정평위에서 독자적으로 ‘치고’ 나가자고 했지요.” 송홍철(67) 신부(영광천주교회 주임신부)는 “윤 대주교님이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들어줄 것이다’라고 하셨고, ‘하지말라’고 말리지 않으셨다”고 말했다. 윤 대주교는 당시 단식농성 중인 신부들의 성당 주일 미사를 서한으로 대체해도 된다고 허용했다.

김양래(61)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8일 광주 금남로 옛 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6층 윤공희 대주교의 옛 집무실 에서 사제들의 단식농성을 회고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김양래(61) 5·18기념재단 상임이사가 8일 광주 금남로 옛 가톨릭센터(현 5·18민주화운동기록관) 6층 윤공희 대주교의 옛 집무실 에서 사제들의 단식농성을 회고하고 있다. 정대하 기자
광주 사제들의 단식농성은 전국 교구로 번졌다. 광주 농성장을 방문한 문정현·문규현 신부 등 전주교구 사제들이 4월24일 단식농성을 이었다. 이어 서울대교구(4월27일)와 안동교구(4월29일) 등 전국 16개 교구로 ‘들불’처럼 번져갔다. 개신교계도 가세했다. 4월24일엔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남노회 소속 목사와 장로 등 20여명이 무기한 단식기도를 시작했다. 4월27일 김병균 목사 등 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소속 목사 27명이 광주와이더블유시에이 6층 사무실에서 단식기도를 시작해 12일을 버텼다. 광주기독교교회협의회(NCC) 인권위원장인 장헌권 목사는 “이를 계기로 전국 128명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시국선언문을 내는 데 동참했다”고 회고했다. 김인환 전 천주교청년연합회 총무는 “천주교·기독교계의 단식농성은 전두환의 4·13호헌조처에 파열구를 냈다”고 말했다.

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소속 목사와 신도 등이 1987년 5월24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거리 시국 기도회를 열고 있다. 장헌권 목사 제공
전남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소속 목사와 신도 등이 1987년 5월24일 광주 금남로 옛 전남도청 앞에서 거리 시국 기도회를 열고 있다. 장헌권 목사 제공
■ 광주·부산의 5·18사진전 80년 5월 광주학살 장면을 담은 사진전을 당시 마련한 것도 천주교광주대교구 정평위였다. 김양래 정평위 간사와 홍성담 화가, 홍세현 청년활동가(광주시 인권옴브즈맨) 등이 나섰다. 이들은 옛 <전남매일> 나경택 기자한테서 5·18 당시 찍었던 사진 필름을 건네받아 임무택 사진가(당시 사진관 운영)에게 부탁해 인화하고 외신 사진을 추가해 사진 70여장을 확대했다. 5월16일 선보인 5·18사진전은 광주 시민들이 3시간 가량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김양래 상임이사는 “천주교부산대교구 박승원(77) 정평위 위원장의 연락을 받고 5·18사진 자료를 보내 드렸다”고 말했다. 부산에서도 5월20일께부터 5·18사진전이 열렸다. 이 사진전은 전두환 정권의 폭력성을 알려 시민의 분노와 저항을 이끌어 낸 ‘불쏘시개’가 됐다.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6월민주항쟁사>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선호, 최평지, 장헌권, 김상집씨. 정대하 기자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는 시민들의 힘으로 <6월민주항쟁사>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선호, 최평지, 장헌권, 김상집씨. 정대하 기자
6월항쟁 지도부 구실을 한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형태의 조직은 광주에서 처음으로 만들어져 전국으로 확산됐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가 5월18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조작·은폐’를 폭로한 직후였다. 5월18일 광주 21개 재야·학생단체는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5·18항쟁 7돌 기념식을 연 뒤, ‘4·13 호헌조치 반대 및 민주헌법쟁취 범도민 운동본부’ 발족을 선언했다. 이어 5월20일 부산에서 ‘호헌반대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가 결성됐고, 대구·경북(5월21일)과 전북(5월24일)으로 이어졌다. 이후 5월27일 서울에서 전국본부인 ‘호헌철폐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가 설립됐다.

광주 21개 재야·학생단체가 87년 5월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4·13 호헌조치 반대 및 민주헌법쟁취 범도민 운동본부’ 발족을 알린 유인물.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제공
광주 21개 재야·학생단체가 87년 5월18일 광주 망월동 묘역에서 ‘4·13 호헌조치 반대 및 민주헌법쟁취 범도민 운동본부’ 발족을 알린 유인물.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제공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해온 5월투쟁은 6월민주항쟁으로 연결됐다. 6월9일 반독재 민주화 시위를 하던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뒤 시민들은 전국 곳곳에서 거리시위에 참여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직선제 요구를 수용한 6·29선언은 시민의 힘에 굴복한 결과였다. 7월9일 광주에선 이한열씨의 영결식에 참석한 30만여 명의 시민들이 운구차를 두고 경찰과 공방전(‘운암전투’)을 벌이기도 했다. 5·18민주유공자로 국민운동 광주전남본부 재정국장을 지낸 김상집(61)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80년 5·18 때는 광주만 고립됐지만, 87년6월항쟁 때는 전국에서 민주정부 수립을 요구하며 동시다발로 함께 싸웠다”고 말했다.

6월민주항쟁은 5월투쟁이 연장되고 확장된 결과였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5월과 6월은 한 호흡이다. 무등산만 알고 있던 광주의 진실이 남산(서울), 금정산(부산), 팔공산(대구) 등지에서도 알게됐다. 광주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이 7년이 걸린 것”이라며 “광주만 고립됐던 5·18항쟁과 달리 6월민주항쟁은 각 지역이 힘을 모아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들고 일어났다는 점이 특징적”이라고 말했다.

87년 5월 18일 광주 망월묘역에서 전국 첫 국민운동본부 형태의 단체를 설립한 뒤 낭독한 선언문.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제공
87년 5월 18일 광주 망월묘역에서 전국 첫 국민운동본부 형태의 단체를 설립한 뒤 낭독한 선언문.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제공
■ 부산의 6월항쟁 87년 6월엔 부산도 뜨거웠다. 1987년 6월18일. 연세대생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중태에 빠지자 국민운동본부가 선포한 ‘최루탄 추방의 날’이었다. 이날 부산 서면교차로 사방 도로엔 30여만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호헌 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던 시위대가 부산 동구 좌천동 범일고가도로에 도착하자 경찰은 최루탄을 쏘며 진압했다. 이 과정에서 이태춘(당시 27살)씨가 고가도로에서 추락해 숨졌다.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 부산본부’(부산국본)는 6월27일 오전 10시 부산 범일성당에서 이씨의 장례식을 열었다. 장례를 마친 부산국본 관계자들은 시민들과 문현동 교차로까지 도로를 따라 행진했다. 흰색 마스크를 쓴 노무현(당시 41살) 상임집행위원장이 이씨의 영정사진을 들고 맨 앞에 섰다. 그의 옆엔 문재인(당시 34살) 상임집행위원이 흰색 마스크를 쓰고 함께 행진했다.

부산의 87년 6월 민주항쟁을 지휘했던 부산국본을 실질적으로 이끈 것은 부산민주시민협의회였다. 부산국본의 지도부와 실무진은 대부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간부들이었다. 부산국본 회의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실(부산도시철도 1호선 범냇골역 1번 출구)에서 주로 열렸다.

노무현 변호사와 문재인 변호사는 서슬 퍼렇던 전두환 군사정권의 탄압을 뚫고 1985년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창립을 주도했다. 두 사람은 상임위원을 맡았다.

두 사람은 6월 민주항쟁기간 시민들과 함께 최루탄을 맞으며 싸웠다. 당시 노 변호사는 주로 마이크를 잡고 앞에 나서 집회 사회를 보거나 시위대 앞에 섰다. 6월10일 충무동 시위에선 선봉에서 ‘독재타도’를 외쳤다. 6월28일 부산가톨릭센터 앞에서 열린 시국토론회에선 1시간30분 동안 사회를 봤다. 5000여명의 시민은 환호와 박수, 폭소를 터트렸다.

부산국본 사무국장을 맡았던 고호석씨는 “당시 노 변호사가 바깥에서 활동했다면 차분한 성품인 문 변호사는 부산국본과 부산민주시민협의회의 살림을 주로 책임졌다.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사무실 계약도 문 변호사 이름으로 했다”고 말했다.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 관계자들이 1987년 6월27일 이태춘 열사의 장례를 치르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앞줄에 영정을 든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부산국본 상임집행위원장) 왼쪽에 문재인 대통령(당시 부산국본 상임집행위원)이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민주헌법쟁취 범국민운동 부산본부 관계자들이 1987년 6월27일 이태춘 열사의 장례를 치르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앞줄에 영정을 든 노무현 전 대통령(당시 부산국본 상임집행위원장) 왼쪽에 문재인 대통령(당시 부산국본 상임집행위원)이 있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 6월항쟁 기념표지석 설치 6월민주항쟁 30돌을 기념하는 행사가 전국에서 열린다. 서울에선 9일(이한열문화제)과 10일(6월 민주항쟁 30년기념 국민대회)에 기념행사가 마련된다. 광주에선 10일 오후 5시 남동성당, 원각사, 서현교회 도로 앞에 집결한 뒤 오후 6시 5·18민주광장에 모여 기념행사를 연다. 6·10항쟁 30돌을 기념하는 표지석도 곳곳에 들어선다. 10일 오후 6시30분 대구 중구 대구백화점 앞에서 30돌 기념 표지석 제막식이 열린다. 10일 경남 창원시 창동사거리 바닥에도 표석이 설치된다. 전남 목포시민단체도 10일 오전 11시 오거리문화센터에서 목포 6월항쟁 표지석 제막식을 연다. 성남민주화운동사업회는 30일 옛 성남시청 앞 광장 등 3곳에 기념 표석을 세운다. 광주에선 앞으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6월민주항쟁사’를 집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평지(64) ‘광주전남 6·10항쟁기념사업회’ 전 대표는 “10년 전 6월민주항쟁 20돌을 기념해 나온 책에 광주·전남의 6·10항쟁 관련 내용이 잘못 기록됐다”며 “5·18민주화 운동이 6월항쟁의 뿌리라는 관점에서 ‘6월민중항쟁사’를 발간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광주 부산/정대하 김광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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