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제주4·3연구소장/시인 곶자왈을 걸었다. 여행자의 분위기로 걸었다. 원하지 않아도 자연 바람이 그대로 몸에 감긴다. 중생대의 숲 같다. 어둡고, 밝고, 빛난다. 돌쩌귀의 검으나 푸르른 이끼와 이끼, 울퉁불퉁 돌길에선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나 그렇듯 연두와 초록, 여린 꽃들, 고사리 수풀, 복잡하나 질서있는 그것들은 순환의 생명력을 보여준다. 곶자왈은 섬의 뜨거운 감성의 지류이자 섬의 근원이다. 그 곶자왈을 걸었다. 잊을 수 없다. 맨 처음 곶자왈에 들어섰을 때의 전율을. 거대한 암석이 늙은 팥배나무의 뿌리를 만삭의 여인처럼 의연하게 품고 있는 위용을. 바위에 뿌리를 박고 살아가는 나무와 돌, 서로 얽히고설킨 삶처럼 공생하는 덩굴식물, 뿌리와 뿌리가 좌절과 희망이 뒤엉키며 말하는 듯했다. 죽은 줄 알았던 희망이 꿈틀거리고 치유할 수 없는 것도 치유되는 듯했다. 나는 그 몸의 정신이 조금은 스며들기를 희망했다. 십수 년 전, 선흘곶을 함께 걸었던 선흘사람 고 김형조씨. 그가 생각난다. 4·3시기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살아남아 선흘리의 4·3을 증언한 사람. 숨을 수 없던 중산간 사람들이 숨어들었던 숲. 산재한 천연 동굴들에 피신했다가 처참한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역사를, 선흘곶에서 숯을 굽고, 나무를 하고, 식량을 채취했던 주민들의 삶으로서의 숲이었음도 말했다. 그때 알았다. 그곳 사람들에게는 그때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참으로 각별한 생명의 숲이었음을. 제주에 정착한 사람들이 모여 이런 이야기를 한다. 고향을 버리고 바다 건너왔는데, 이젠 제주도를 떠나야 하나? 도시의 번잡한 삶에 질려 꿈꾸던 제주로 왔는데 제주마저 똑같다. 그렇다면 구태여 제주에 살 이유가 있겠나 싶다고. 갈수록 숨 막히는 교통난, 부동산 열풍. 한라산과 바다를 가리는 난개발이 그러한 마음을 부추긴다고. 많은 사람이 처음엔 꿈꾸던, 여유로운 삶을 위해 제주를 찾는다. 허나 어떤 당신들의 욕망이 너무 모여서 제주가 몸살이라고 반문해본다. 제주의 속살을 보여주고 싶다며 여기저기 속살을 파헤치고 있는 모순이라니! 그럼에도 위안을 주는 공간이 곶자왈이라는 데 동의한다. 오름에 올라 사방을 보라. 파도처럼 너울지는 검은 숲이 보인다. 곶자왈은 제주 생명수의 원천이며, 제주의 허파다. 화산의 용암은 꿈틀 흘러내리며 수풀과 돌이 우거진 곶자왈을 탄생시켰다. 한반도에서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이 원시림은 야생의 생명력으로 매혹한다. 허나 곶자왈은 개발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선흘곶은 이미 10여 년 전, 뜨거운 논란을 일으켰었다. 결국 묘산봉관광지구개발사업으로 한 부분이 무너졌다. 그럼에도 이젠 동백동산 옆에 추진되고 있는 제주사파리월드 조성사업이 뜨겁다. 먼 거리에서도 아름다운 경관을 자꾸 벗겨서 속살을 보려는 인간의 눈은 끝없이 그것을 탐한다. 다음 세대까지 그대로 놔두지 못한다. 이쯤 되면 격류다. 제주도는 아직도 곶자왈 경계 용역에 대한 결과를 두 번이나 연기하며 발표를 미루고 있다 한다. 그 결과를 공개 않는 이유는 뭔가. 개발 문제와 맞물려있는 것이 아닌가. 시민단체가 자연환경국민신탁과 곶자왈 한평 사기 운동을 하며 지켜오고 있으나 쉽지는 않다. 무엇보다 행정이 곶자왈을 개발 대상으로 보는 인식이 문제 아닐까. 왜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제주를 지켜주는 제주의 허파에 인공 메스를 대려는가. 곶자왈은 자연유산과 문화, 역사유산의 보고다. 곶자왈의 식생을 넘어 이 부분에 대한 심층적인 조사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새로운 차원의 곶자왈 공유 개념, 정책수립이 따라야 한다. 곶자왈이 당대의 것인가. 왜 후대의 것이어선 안되는가. 왜 인간만의 것인가.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의 것이어선 안되는가. 늦게야 그때 그것을 지켰더라면 하는 후회를 남기고 말 것인가. 우리가 원하는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가. 곶자왈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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