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이버 정동승씨가 지난 9일 대전 태평동 자택 거실에서 우산을 고치고 있다. 그는 이날 버려진 우산 10개를 주워 와 고쳤다. 대전 중구청 제공
장마가 한창인 요즘, 대전 태평동 버드내아파트 노인정 회원들은 ‘정가이버표’ 우산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인근 버드내초교 어린이들도 정가이버 우산을 애용한다. 이 우산들은 정동승(80)씨가 무료로 나눠준 것이다.
“그 양반은 못 고치는 게 없슈. 손만 닿으면 너덜거리던 우산이 멀쩡한 새것이 된다니께.” 노인정 회장인 이효일씨의 말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옛 인기 외국 드라마의 주인공 이름인 ‘맥가이버’에 정씨의 성을 붙여 별명을 만들었다.
정씨가 우산 나눔을 시작한 것은 15년 전 학교 버스를 운전하다 정년퇴직을 하고 지금의 아파트로 이사 온 때부터다. 그는 길가에 버려진 우산을 주워 수선해 이웃에 나눠주었다. 지난 7일에도 버드내초교에 고친 우산 100개를 기증했다.
“이상한 눈길로 보는 이들도 있고, 안 받는 이들도 있었죠. 마누라도 우산 주워 오는 걸 탐탁잖아하는걸요. (허허허) 여남은 개 고쳐 동사무소에 쓰라고 주고, 개수가 좀 더 되면 재활시설에 주고 그랬어요. 지금까지 한 3천개는 넘을 겁니다.”
정가이버 정동승씨가 지난 9일 대전 태평동 집 거실에서 부러진 우산살을 고치고 있다. 그는 10여년 동안 버려진 우산 3천여개를 고쳐 학교와 노인정 등에 무료로 나눠주었다. 대전 중구청 제공
그의 집 베란다와 거실은 살이 꺾이고 손잡이가 망가진 우산들이 차지했다. 심하게 망가진 우산은 부품용으로 쓰고, 조금 부서진 우산은 고친다. 우산 사이로 청소기와 선풍기도 보였다. “선풍기와 청소기, 벽시계도 고쳐요. 대전 삼성동에 살 때 옆집 아저씨가 가전제품 수리점을 해 어깨너머로 배웠죠.” 고쳐 놓으면 누군가에게 필요한 물건이 된다. 쓸 만한 선풍기를 얻거나 소문 들은 이웃이 청소기 수리라도 맡기는 날이면 신바람이 난다. 팔순이지만 이웃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즐거워서다.
“학교 버스를 운전할 때인데 애가 부서진 우산을 들고 울더라고요. 고쳐줬더니 얼마나 좋아하던지 코가 땅에 닿게 절을 해요. 손재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젊어서 화물차를 운전하며 기계를 배웠어요.” 그는 “요즘은 물질이 흔해서 물건에 대한 애정이 예전 같지 않다. 물건을 아끼고 고쳐 쓰는 검소한 삶을 사는 이웃이 많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대전/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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