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각종 재정적 지원사업을 통해 간선제를 유도하는 방식을 폐지하겠습니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7일 부산 금정구 부산대 장전동캠퍼스 10·16기념관에서 열린 ‘고현철 교수 2주기 추도식’에서 “문재인 정부는 국립대가 총장 후보자를 선출할 때 자율권을 보장하겠다”고 말하자 박수가 터졌다. 이어 그는 “대학이 선정하여 추천한 후보자는 대학 구성원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서 정부의 인사권을 행사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는 “총장의 장기 공석으로 인한 대학의 혼란과 갈등을 조속히 해결하겠다”고도 했다. 직·간접선거로 뽑은 총장을 교육부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차일피일 미루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김상곤 부총리가 17일 부산대에서 열린 고현철 교수 2주기 추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로써 교육부는 이명박 정권 때인 2012년부터 국공립대학 총장 선출방식을 전체 정규직 대학교수 등이 뽑는 직접선거에서 외부 인사 등으로 꾸려진 추천위원회가 뽑는 간접선거로 바꾸던 정책을 5년 만에 공식 폐기했다. 고 교수가 세상을 떠난 지 2년 만이다.
국어국문학과 정교수이던 고 교수는 부산대가 교육부의 옥죄기에 굴복해서 간접선거로 총장을 뽑으려는 움직임이 일자 2015년 8월17일 부산대 장전동캠퍼스 본관 3층 국기게양대에서 ‘직선 총장 사수’ 등을 담은 유서를 남기고 뛰어내렸다.
부산대는 고 교수의 유지를 받들었다. 다른 국공립대들이 교육부의 재정삭감 압박에 백기 투항을 했지만 2015년 11월 직접선거를 통해 두 명의 총장 후보를 뽑았다. 교육부는 여섯 달이 지난 뒤인 지난해 5월에야 박근혜 대통령한테 1위를 차지한 전호환 후보를 임명해 달라고 제청했다. 부산대는 지난해 6월 전 총장의 취임식을 열었다.
고현철 부산대 교수 2주기 추도식이 열린 10·16기념관.
전 총장이 취임했지만 교육부는 보복했다. 2015년에 지원하기로 한 대학특성화사업(CK) 48억원2500만원 가운데 7억2375만원과 학부교육 선도대학 육성사업(ACE사업) 22억9700만원 가운데 11억4850만원을 삭감했다.
교육부의 보복에 맞서 부산대 전체 정규직 교수 1200여명은 지난해 1월치 급여 가운데 120여만원씩을 갹출했다. 부산대 민주동문회도 모금운동을 벌여 지난해 5월 186명이 낸 후원금 1500만원을 모교에 전달했다.
고 교수의 죽음은 당시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정규직 대학교수가 대학 자율화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첫 번째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으로 끊길 뻔했던 국공립대학의 총장 직선제는 명맥을 유지했다. 실제 전국 38개 4년제 국공립대학 가운데 부산대를 뺀 37곳이 교육부의 압박에 굴복해 간선제로 돌아섰고 지금도 유일하게 부산대가 직선 총장을 유지하고 있다.
고 고현철 교수 2주기 추도식에서 참가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2주기 추도식은 고 교수의 유족과 동료 교수,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차분하게 열렸다. 김 부총리에 이어 김영철 전국국공립대학교수회연합회 상임회장, 전호환 부산대 총장이 고인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내용의 인사말을 했다. 이어 고현철 교수의 약력과 업적 소개, 고 교수 추모사업 경과보고, 조기종 부산민예총 이사장 등의 추도사, 추모시와 추모헌창, 추모헌무, 추모영상물 상영, 추모공모전 당선작 발표와 시상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고 교수가 남긴 숙제도 있다. 직선 총장제 선출방식이다. 2015년 11월 부산대 총장 선거 때 부산대교수회는 투표권을 전체 정규직 교수 1185명(87.4%), 직원 대표 130명(9.6%), 조교 대표 22명(1.6%), 학생 대표 18명(1.3%)으로 구성했다. 비정규직 교수 등은 투표권이 없었고 직원들과 학생들은 투표권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했지만 교수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이 고현철 교수 2주기 추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17일 고현철 교수 2주기 추도식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학운영체계를 민주적이고 평등하게 바꾸어야 한다. 총장선출권은 학생, 대학원생, 직접·간접고용 노동자, 정규·비정규교수와 직원, 대학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검증된 외부 인사들이 적절하게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상룡 민주노총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부산대 분회장은 “대학에서 총장의 결정이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므로 학내 구성원들이 모두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추도식 참석자는 “추도식에서 박수가 나오는 것을 처음 봤다. 정권이 일찍 바뀌었으면 추도식도 없었을 것 아니냐”고 탄식했다.
부산/글·사진 김광수 기자
kskim@hani.co.kr
<고현철 교수 유서 전문>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드디어 직선제로 선출된 부산대학교 총장이 처음의 약속을 여러 번 번복하더니 최종적으로 총장직선제 포기를 선언하고 교육부 방침대로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갔다. 부산대학교는 현대사에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였는데, 참담한 심정일 뿐이다.
문제는 현 상황에서 교육부의 방침대로 일종의 간선제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서 올려도 시국선언 전력 등을 문제 삼아 여러 국·공립대에서 올린 총장 후보를 총장으로 임용하지 않아 대학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란 점이다.
교육부의 방침대로 총장 후보를 선출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후보를 임용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대학의 자율성은 전혀 없고 대학에서 총장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서부터 오직 교육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점이 문제이다.
이는 민주주의 심각한 훼손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인식이 대학과 사회 전반적으로 너무 무뎌있다는 점이다. 국정원 사건부터 무뎌있는 게 우리의 현실 아닌가. 교묘하게 민주주의는 억압되어 있는데 무뎌져 있는 것이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상황이 이렇다면, 대학에서의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서는 오직 총장직선제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말이 된다.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 보루 중 하나이며 국·공립대를 대표하는 위상을 지닌 부산대학교가 이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이런 참당한 상황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현대사를 봐도 부산대학교는 그런 역할의 중심에 서 있었다. 총장직선제 수호를 위해서 여러 교수들이 농성 등 많은 수고로움을 감당하고 교수총투표를 통해 총장직선제에 대한 뜻이 여러 차례, 갈수록 분명히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총장간선제 수순 밟기에 들어가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너무 무뎌있다는 방증이다.
대학 내 절대권력을 가진 총장은 일종의 독재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교수회장이 무기한 단식농성이 들어갔고, 오늘 12일째이다. 그런데도 휴가를 떠났다 돌아온 총장은 아무 반응이 없다. 기가 찰 노릇이다.그렇다면, 이제 방법은 충격요법밖에 없다.
메일을 통해 전체 교수들에게 그 뜻을 전하는 것은 내부적으로 교수끼리 보는 방법으로 이미 전체교수 투표를 통해 확인한 바 있는 상황에서 별 소용이 없다. 늘 그랬다. 사회 민주화를 위해 시국선언 등을 해도 별 소용이 없다.
나도 그동안 이를 위해 시국선언에 여러 번 참여한 적이 있지만, 개선된 것을 보고 듣지 못했다. 그것보다는 8·90년대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방식으로 유인물을 뿌리는 게 보다 오히려 새롭게 관심을 끌 것이다. 지금의 상황은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지난 날 민주화 투쟁의 방식이 충격요법으로 더 효과적일지도 모른다.
그 희생이 필요하다면 감당하겠다. 근래 자기 관리를 제대로 못한 내 자신 부끄러운 존재이지만. 그래도 그 희생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그 몫을 담당하겠다.
대학의 민주화는 진정한 민주주의 수호의 최후의 보루이다. 그래서 중요하고 그 역할을 부산대학교가 담당해야 하며, 희생이 필요하다면 그걸 감당할 사람이 해야 한다. 그래야 무뎌져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각성이 되고 진정한 대학의 민주화 나아가 사회의 민주화가 굳건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