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38년만에 평교사로 정년퇴임하는 장석웅 전 전교조 위원장.
장석웅(62) 전 전교조 위원장이 26일 평교사로 38년 만에 교단을 떠난다. 전남 영암 미암중에서 역사를 가르친 그는 이날 세월호 수습 현장인 목포신항에서 고별수업으로 노란 리본을 나눠주는 봉사활동을 진행한다.
그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전교생 7명한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려 한다. 생명이 무엇보다 소중하고, 역사는 어려움이 있어도 조금씩 진보한다는 귀띔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1979년 전남대 국사교육과를 졸업한 그는 보성 율어중으로 첫 발령을 받았다. 부임 첫해부터 대학 시절 학생운동 전력 때문에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는 등 파란을 겪었다. 교직 10년 만인 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 담양 한재중에서 해직되는 등 11년을 교단 밖에서 떠돌아야 했다.
그는 퇴직 소감을 묻자 “초년 교사 시절 정해숙·윤영규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한테 ‘무명교사 예찬’을 수없이 들었다. 선배들의 뜻을 좇아 마지막까지 아이들 곁에서 소명을 다한 것이 다행스럽고 자랑스럽다”고 웃었다. 그는 “공모제 교장 등으로 나가보라는 권유가 없지 않았지만 나의 길이 아니라고 여겼다. 참교육을 실현하려고 애쓰는 수많은 교사가 아직도 현장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 만큼 당연한 일 아니냐”고 되물었다.
그는 해직 이후 전교조 전남지부장, 전교조 사무처장, 전교조 위원장 등으로 교육 민주화에 헌신했다. 특히 위원장이던 2011~12년엔 이명박 정권의 전교조 와해 시도에 대항하며, 혁신학교 운동의 성공을 위해 매진했다. 마침 진보교육감 6명이 당선하며 교육개혁과 학교혁신의 열망이 최고조에 이른 시기였다. 이명박 정권은 정치후원금을 핑계로 조합원 1700명을 무더기로 기소하는 탄압을 했지만 대부분 선고유예와 벌금 30만원으로 매듭지어 위기를 넘겼다. 또 14개 시도를 돌며 1만5천명이 참여한 학교혁신 심포지엄을 펼쳐 당시까지 교실을 넘어서지 못했던 참교육에 지역의 동참을 이끌어냈다.
그는 사회민주화에도 헌신했다. 공안탄압이 한창이던 92년 민주주의민족통일 광주전남연합 사무처장을 맡았고, 전남장애인교육권연대 공동대표, 역사정의 실천연대 공동대표 등으로 부문 운동에도 참여했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는 박근혜정권퇴진 전남운동본부 공동대표와 영암민주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아 촛불의 열망을 이어갔다. 이런 활동으로 그는 ‘김용근 민족교육상’을 받기도 했다.
“교단은 떠나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학교 밖 아이들과 장애인 학생 등 사회적 약자의 교육을 위해 학교와 지역이 협력하는 디딤돌을 놓고 싶습니다.”
안관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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