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여중생이 개학 이틀 만에 목숨을 끊었다. 학교 쪽은 일부 사실을 확인하고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지난 25일 밤 9시20분께 대전시 대덕구 송촌동 한 학원건물 옆에서 ㄱ(16·중3)양이 머리 등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는 것을 길 가던 시민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겼으나 숨졌다. 경찰은 ㄱ양이 가족에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 점 등으로 미뤄 투신해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이에 앞서 ㄱ양은 지난달 24일 학교 상담교사에게 “지난 2월 20대 남자에게 성폭행당했다. 같은 반 친구 ㄴ양이 성폭행 장면을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촬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학교 쪽은 2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ㄱ양과 관련한 안 좋은 소문이 나서 상담하는데 ㄱ양이 이같이 말했다. 또 동영상을 촬영했다고 지목된 ㄴ양도 ‘남자가 시켜서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었다’고 말해 성·폭력 피해 원스톱상담기관인 대전 해바라기센터에 신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학교는 두 여학생을 격리하는 등의 조처를 하지 않아 지난 23일 개학한 뒤 두 학생이 한 교실에서 생활한 것으로 드러났다. 학교 쪽은 “개학에 앞서 이달 중순에 학교폭력위원회를 열고 두 학생에게 개학해도 당분간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권유했으나 두 학생 모두 학교에 안 갈 이유가 없다며 등교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라 조치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 학교 관계자는 “ㄱ양 말대로 ㄴ양이 동영상을 찍었다는 건 상담 과정에서 확인했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해 밝힐 사안이어서 성급하게 징계 등을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대전 유성경찰서는 20대 남자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ㄱ양과 ㄴ양의 진술이 엇갈리지만 두 학생이 사건 전 20대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영상은 이 남자의 휴대전화로 촬영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남자를 상대로 성폭행 여부 등을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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