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선재씨는 14일 소품의 생김새를 보고 표현 방식을 고민해 그림을 그린다고 말했다. 대전대 제공
이어폰에서 쏟아지는 음표에 남자가 샤워를 한다. 유에스비(USB)는 아이언맨이 됐다. 컴퓨터 연결 부위가 아이언맨 얼굴과 정말 똑같다. 수세미는 심슨가족 엄마의 머리로 변신했다.
일상의 소품을 활용해 그림을 그리는 아마추어 소품 아티스트 허선재(23·대전대 경영학과 2년)씨의 그림이다. 단선으로 그린 그림이니 일러스트에 가깝다.
경영학도가 그림에 빠진 것은 의경으로 복무하던 2015년 12월, 한입 베어문 붕어빵이 계기가 됐다. “이빨 자국이 동그랗게 난 붕어빵의 빈 공간에 사람 얼굴을 그렸는데 어울리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해서 작업을 계속했죠.” 그림을 배운 것은 초등학교 때 미술학원에 다닌게 전부였지만, 타고난 소질과 남다른 관찰력으로 그림을 그려 인스타그램(art.meriker), 페이스북(소품아티스트 허선재)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다.
그가 올린 그림은 430여점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널리 알려진 만화 주인공이 등장하는 날이면 청소년들은 물론 초등학교 선생님들도 ‘엄지 척’ 하며 공유한다.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그림 소재이므로 노트를 갖고 다니며 늘 스케치한다. 소품의 용도보다는 생김새에 집중하고, 영감이 떠오르면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표현 방식을 고민한다.
소품 아티스트 허선재씨가 그린 아이언맨, 샤워, 약속할게(왼쪽부터) 그림. 대전대 제공
그가 게시한 그림 가운데 새끼손가락에 걸린 그네를 타는 사람의 제목은 ‘약속할게’다. 이 사람은 얼굴이 까맣고 고개를 숙인채 그네에 힘없이 앉아있다. “힘들 때가 많잖아요. 그래서 그네에 앉아서 마음의 아픔을 추스르라는 의미로 그림을 그렸어요. 새끼손가락은 약속할때 거는 손가락이고요.”
입소문이 나면서 그는 인디밴드의 앨범 디자인을 하는가 하면 한 출판사와 계약해 다이어리를 디자인 하기도 했다. 이 다이어리는 매진됐다. 그는 졸업뒤 광고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 부족한 그림 기초를 공부하고 있다. 그의 롤 모델은 광고 천재 이제석이다.
“제 그림을 좋아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 친구들이 대부분 10~20대입니다. 그림으로 사회적 이슈 가운데 청소년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대한 공감대를 넓히고 싶습니다. 소품을 이용하는 특성 때문에 만족할 만한 그림이 나오지 않아 고민입니다.” 그는 학교 폭력 문제를 한 컷의 소품 그림으로 그려내느라 몰두했다.
송인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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