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울산 노동자 대투쟁을 이끌었던 주역들이 13일 당시 노동자들이 대규모 거리행진을 벌이며 경찰과 대치했던 울산 동구 남목고개 현장을 함께 손잡고 걷고 있다. 왼쪽부터 이채석·정병모·이은경·조규대·김진국·이형건씨. 조규대씨는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설계부문 부위원장을 맡았다, 신동명 기자
“남목고개를 넘던 날, 대치했던 경찰의 봉쇄가 풀리자 노동자들이 이내 성내삼거리까지 물밀듯이 내달렸습니다. 일부는 근처 논두렁에서 대기하다 미처 피하지 못한 전경들에게 달려드는데 분위기가 심상찮아 지도부가 이를 말리느라 꽤 애를 먹었죠.”
현대중공업 전 노조위원장 정병모(60)씨는 지난 13일 오후 울산 동구 남목고개 입구에서 30년 전인 1987년 8월18일 6만여명(경찰 추산 4만여명)의 노동자들이 현대중공업에서 이 고개를 넘어 시내 공설운동장까지 16㎞ 거리를 행진한 상황을 이렇게 회고했다. 정씨는 당시 노동자들의 자주적인 ‘민주노조’ 설립을 막으려 회사 쪽이 어용노조를 만들어 먼저 신고한 데 맞서 ‘노조개편대책위원회’(11인 대책위)를 함께 꾸려 활동했다.
이날 남목고개엔 30년 전 정씨 등과 함께 ‘민주노조 인정’과 ‘노동기본권 보장’을 목놓아 외치며 이 고개를 넘거나 상경투쟁을 했던 이은경(60)·김진국(58)·이채석(57)·이형건(65)·조규대(69)씨 등 6명이 오랜만에 자리를 함께했다. 노동자 대투쟁 주역들은 가슴 벅찬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가 하면 회사의 반노동적 억압과 노조의 한계로 인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진 대목에선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이은경씨가 떠올리는 노동자대투쟁은 뿌듯함이다. “행진 대열이 현대중공업 정문에서부터 남목까지 4㎞에 걸쳐 왕복 4차선 도로를 꽉 메웠죠. 트랜스포터에 샌딩머신을 싣고 지게차 등 각종 중장비를 앞세워 경찰과 대치할 때엔 피가 마를 듯한 긴장과 공포감도 들었지만 끝까지 평화적으로 행진을 마무리한 노동자들의 저력에 뿌듯함을 느꼈다”고 했다. 중전기사업부에서 일하던 이씨는 지난 4월 회사가 분할되면서 지금은 현대중공업이 아니라 현대일렉트릭 소속이 됐다.
1987년 6월항쟁의 뒤를 이어 7∼9월 전국을 뜨겁게 달군 ‘노동자 대투쟁’의 시작점은 울산이었다.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던 엄혹한 시절이었다. 노동자들은 회사 차원의 노동통제에 맞서 노동자에 대한 인격적 대우 등을 요구하며 분연히 뭉쳤다. 무노조이던 현대그룹 계열사 10여곳에서 노조가 만들어지고 이들이 모여 ‘현대그룹노동조합협의회’를 결성하고 거리행진을 이끌면서 전국 노동자 대투쟁의 ‘상징’이 됐다. 그 뒤부터 이듬해까지 전국의 사업장에선 노조 결성이 폭발적인 양상으로 나타났고 노동자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비로소 힘을 얻게 됐다.
대투쟁 당시 노조 설립이 다른 계열사로 확산돼가자 회사 쪽은 설립신고서 접수증을 빼앗거나 ‘어용노조’를 만들어 먼저 신고하게 하는 방식으로 방해에 나섰다. 하지만 이는 곧 전체 계열사 노동자들의 분노와 반발을 불렀다.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은 ‘11인 대책위’ 중심으로 8월14일 총회를 소집해 ‘어용’ 노조집행부를 불신임하고 직선으로 이형건씨를 새 노조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마침내 파업과 거리행진 등의 지난한 싸움 끝에 회사 쪽으로부터 새 노조집행부를 인정받게 됐다.
정씨와 함께 11인 대책위에 참여했던 김진국씨는 “당시 노동자들 요구사항에 두발 자유화, 아침체조 자율화 같은 게 있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자라는 말을 꺼내기 힘들 정도로 자존감이 약했지만 민주노조 깃발로 뭉치고 함께 싸우면서 지금은 자부심도 생기고, 사회적 지위나 대우도 나아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투쟁의 주역들이 바라보는 현재 노조의 모습엔 아쉬움이 많다. 김씨는 “현재 노조 조직력은 내부 이념이나 노선의 차이로 분산되며 많이 무력화됐다”고 안타까워했다. 1988년 1월 노조 수석부위원장을 맡다 구속·해고된 뒤 김씨는 여태껏 복직하지 못했다. 11인 대책위 활동을 함께한 이채석씨는 “30년 전엔 노사 모두 경험 없는 초보였고 서툴렀다. 그래도 그때 노조 지도부는 열정을 갖고 스스로 헌신과 희생을 아끼지 않는 ‘노동자다운’ 지도력을 발휘했다”며 “회사 쪽 노무관리는 30년 경험과 노하우를 축적해 지능화했지만 지금 노조의 대응은 회사에 말려들고 끌려다니는 10살 아이 수준에 불과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병모씨도 “회사가 노조를 타이트하게 관리하며 경험을 쌓아온 동안 노조는 지도부의 구속·해고로 경험을 이어가지 못하고, 내부 의견 그룹이 갈리면서 분파가 생기고, 세대 간 소통 단절까지 더해져 힘을 기르지 못했다. 노조 조직의 고유한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여기에 현대중공업 노사관계의 특수한 사정도 많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은경씨는 “30년 전 앞장서 싸웠던 지도부 가운데 많은 이들이 제 살길 찾아가는 바람에 지속해서 활동한 사람은 드물다”며 자성론을 꺼냈다.
현대중공업 노조 위원장을 지낸 이형건씨는 “회사 쪽이 협조적인 온건 성향의 노조엔 실리를 챙겨주면서 ‘강성’이라고 여기는 민주노조엔 여전히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며 노노갈등을 유도하고 회유·방해책을 서슴지 않고 있다. 최근 조선업 경기 불황으로 일감이 줄면서 고정연장 수당을 받지 못해 급여가 20~25% 줄어들어 약해진 노동자들의 마음을 회사 쪽이 더욱 부채질하며 노조의 무력화를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정년퇴직한 뒤 3년 가까이 사내하청 노동자로도 일한 적 있는 이씨는 “30년 전엔 정규직과 하청 노동자들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는데 지금은 차별이 커졌다. 하청 노동자들의 미약한 노조 조직률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대투쟁 당시 회사의 노동탄압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은 직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1988~89년엔 128일 파업, 90년엔 4월엔 유명한 골리앗 파업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변한 건 없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해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조차 의견 접근을 보지 못해, 김진석 노조 수석부지부장이 울산시의회 옥상에서 이날로 113일째 고공농성을 벌였다. 신동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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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8월 각종 중장비를 앞세우고 울산 동구 남목고개를 넘어 행진하는 노동자들. 금속노조 현대중공업지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