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방경찰청 이상순(왼쪽부터), 정장영, 신미애, 김혜숙 검시관이 지난 30일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대전에서 발생하는 연간 1400건의 변사 사건에 출동해 사인을 가린다.
‘대전 동구 ○○동 변사’.
정장영씨는 지난 설날 출동 요청을 받았다. 사건이 발생한 대전역 근처는 홀몸노인이 많이 거주한다. 홀로 지내다 숨지는 고독사가 빈번한 동네다. 이날 변사자는 90대 노인이었다.
정장영씨는 대전지방경찰청 형사과 과학수사계의 검시조사관(검시관)이다. 변사자가 죽음에 이르기 전 한 일, 혹은 당한 일과 흔적을 주검에서 찾는 게 그의 일이다. 타살 흔적은 없었다. 정 검시관과 현장 수사팀, 과학수사 감식팀, 검안 의사의 눈길이 작은 밥상에 모였다. ‘미안하다. 먼저 간다’는 유서, 같은 글씨체로 이름을 쓴 봉투 2개.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힌 이름은 숨진 노인의 아들 형제였다.
검안을 마친 주검에 시체포를 덮었다. “그쪽에 가서는 편안하게 지내세요.” 묵념했다.
검시관은 전국 경찰에 107명, 대전경찰청에는 막내인 정씨와 김혜숙·이상순·신미애씨 등 검시관 4명이 근무한다. 대전은 검시관이 처리하는 변사 사건이 연간 1200~1400건에 달해 업무 강도가 전국에서 제일 세다. 하루에 11건을 처리한 날도 있다. 대전경찰청 관할구역이 넓지 않아 모든 변사 현장에 출동하기 때문이다.
대전지방경찰청 검시관들이 지난 30일 오전 과학수사계 사무실에서 최근 발생한 변사 사건들의 사인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2006년 검시관 제도가 처음 도입되자 수사형사들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달갑지 않게 바라봤다. 그러나 지금은 “검시관 덕분에 수사 인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며 신뢰한다. 자살을 타살이라고 오해한다면 수사력의 낭비일 터다. 반대의 경우에는 사법권이 제 기능을 잃는다. 이상순 검시관은 “변사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생전에 할 수 있는 일인가를 자문한다. 몇년 전 한 여인숙에서 변사자가 머리끝까지 단정하게 이불을 덮은 채 발견됐다. 자살처럼 보였지만 죽는 사람이 이불을 덮고 움직임 없이 숨을 거둘 수 있는지 따져 살인 사건임을 밝혔다”고 말했다.
검시관은 의료사고 사건과 마약 수사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 전직이 간호사, 임상병리사 등으로 의학 지식과 임상 경험이 있고 법의학 지식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신미애 검시관은 돌연사로 종결된 뻔한 의료사고를 밝혀냈다. 10년 전 한 병원에서 여대생이 숨졌다. 의사는 여대생이 성형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잘 깨어났는데 자다가 숨졌으니 돌연사라고 주장했다. 신 검시관은 부검 결과서를 분석했다. 몸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전해질 가운데 나트륨 등이 정상치보다 낮았다. “의료차트를 보니 수액량이 과다했어요. 금식 환자에게도 24시간 동안 3ℓ 투여하는데 이 환자는 7시간 동안 6ℓ 이상을 주었더군요. 의료과실로 결론냈죠.”
김혜숙 검시관은 마약 사건 수사팀의 요청을 받고 병원 압수수색에 동행해, 대학병원 중환자실 근무 경험을 살렸다. 의사가 마약을 상습 투여한다는 제보가 있는데 증거가 없었다. 김 검시관은 병원 마약류 보관 냉장고에서 마약 대신 식염수를 채운 앰플들을 찾아냈다. 제보가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검시관들은 변사자의 70%는 고독사이고 대부분이 홀몸노인이라고 전했다. 절반 정도는 끼니만 거르지 않았어도 죽음에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추석이나 설날 명절과 기일이 같은 날이면 자식들이 제사 준비하는 부담이 덜할 것으로 여겨 명절날 목숨을 끊는 홀몸노인도 있다고 한숨지었다.
대전경찰청 과학수사계 검시관들은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하고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노인층은 물론 청년층으로 고독사가 확산하고 있어 사회적으로 공동체를 복원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고독사는 가족 공동체가 해체돼 나타나는 응달입니다. 사회적 공동체를 꾸려 고독사를 줄였으면 좋겠습니다.” 대전경찰청 검시관 4인방이 떠오를 추석 달에 빈 소망이다.
대전/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