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 공감 #22
작은 마을에서 국가에 이르기까지 사람 사는 곳 어디나 갈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더 복잡해지는 사회에서 늘어나는 갈등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이다.
최근 사회적 갈등 사안 중 하나인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의 지속과 중단을 두고 갈등이 첨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탈핵, 탈원전을 공약으로 내걸어, 건설 공정률이 높은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는 일단 중단한 후 사회적 논의를 거쳐 완공 또는 운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었다. 공정률이 낮은 신고리 5·6호기와 계획 중인 신한울 3·4호기, 영덕, 삼척 원전은 백지화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약속은 후퇴하고 말았다. 사회적 논의를 거쳐 운영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던 신고리 4호기, 신한울 1·2호기의 가동을 기정사실로 했다. 30% 이하의 공정률을 보이는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공론조사 방법을 채택했다. 신고리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시민참여단의 결정이 나오면 이를 존중해 정책에 반영하기로 했다. 국민에게 묻지도 않고 추진하는 결정들로 인해 정부 스스로 갈등을 불러왔던 이전에 비해 정책 결정 권한을 시민에게 주는 민주적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나온 공론조사가 관심을 끈다. 여론조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정보와 설명을 사전에 듣지 않더라도 현재의 생각을 알아보는 방식이다. 공론조사는 해당 사안에 대해 정보를 듣고 충분히 생각한 다음에 어떻게 판단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이다. 공론조사는 여러 나라에서 이미 갈등조정 방식으로 사용되어 대표성, 평등성, 전문성, 합리성, 책임성 등의 장점을 입증하며 성과를 얻고 있다.
신고리공론화위원회는 19살 이상으로 지역, 연령, 성별, 의견 등을 고려해 뽑힌 500명의 ‘시민대표참여단’을 구성한다. 찬반 양측의 주장과 근거를 소개한 자료를 받은 시민참여단은 한 달여 동안 숙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2박3일 간의 합숙토론을 한 후 공론을 도출해 공론화위원회에 의견을 전달한다. 위원회는 다시 수렴된 의견을 정부에 전한다. 이 과정에서 여러 차례의 교육과 토론을 통해 참여자들이 처음 가졌던 생각과 견해가 바뀌기도 한다.
어렵사리 만들어진 공론화의 판을 찬성과 반대 측은 서로 잘 활용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공론화위원회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음에도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벌써 ‘전문가를 배제한 여론재판’이라는 등 갈등조정 방식에 대한 흠집 내기가 도를 넘고 있다. 이는 시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공론화의 마당을 다시 이해관계에 따른 공세가 난무하는 정치인, 관료, 당사자에게 넘기자는 것과 같다. 10일 후 공론조사 결과 발표에 앞서 필요하다면 숙의 과정을 더 가질 수는 있지만, 하나의 갈등관리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공론조사를 통한 공론화의 판 자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나아가 형식과 내용을 적절히 접목한다면 공론조사는 국가적 사안뿐 아니라 전국 곳곳의 지역에도 적용 가능한 갈등조정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광양만권은 호남화력, 여수화력, 하동화력 등을 포함해 가동 중인 발전소만 11개에 이른다. 대기환경 규제지역과 특별관리 해역으로 지정될 만큼 환경이 열악하기 짝이 없다. 더욱이 광양만권은 산업단지 밀집지역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의 광양 목질계화력발전소 신설을 비롯한 신·증설 계획이 지역 안에 수두룩하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찬·반 갈등이 불거져 몸살을 앓고 있다.
여수, 순천, 광양, 하동, 남해, 사천 등을 아우르는 광역권역 시민들이 한데 모여 광양만권의 환경 관련 사안을 숙의해야 한다. 광양만권 대기환경공론화위원회가 필요한 이유이다. 광양만권 화력발전소 갈등을 비롯한 환경문제를 광역권역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론조사로 풀어보자.
마을문화기획자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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