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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서식지 가꿔 동물 풀어주다…동물원의 진화

등록 2017-10-16 10:29수정 2017-10-16 18:23

지난 7월20일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 안에서 사슴들이 초원을 거닐고 있다. 전시된 동물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는 느낌이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사파리 형태다. 김일우 기자
지난 7월20일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 안에서 사슴들이 초원을 거닐고 있다. 전시된 동물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는 느낌이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사파리 형태다. 김일우 기자

동물원이 살아남기 위한 첫번째 과제가 ‘교육’이라면, 두번째이자 최후의 과제는 ‘보전’입니다. 보전은 단지 멸종위기종 동물 번식을 많이 해 이 땅의 동물 마릿수를 늘리는 ‘노아의 방주’ 구실이 아닙니다. 상업적 목적을 앞세우다 보니 근친교배를 포함해 무조건 번식을 장려하던 과거 잘못을 인정하고, 생물 다양성을 지킬 수 있도록 종을 관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합니다. 더 나아가 전문가들은 앞서가는 동물원이라면 그 동물들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야생 서식지를 가꾸는 데 앞장설 것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국내 공영동물원 가운데 ‘종 관리와 보전, 서식지 보전에 신경쓰고 있다’고 답한 곳은 서울동물원과 청주동물원뿐입니다.

아무리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7월3일 새벽 4시께 영국 잉글랜드 버밍엄을 떠난 승용차가 스코틀랜드 지방 케언곰스 국립공원에 있는 동물원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에 닿기까지 수많은 들판을 지나쳐야 했다.

“때로는 우리 동물들이 잘 안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거기에 있습니다. 시간을 갖고 열심히 보세요. 당신을 보고 있는 동물들을 발견할 것입니다.”

이 동물원의 동물 수급 책임자인 더글러스 리처드슨은 말했다. “이상적인 동물원은 동물들에게 실제 자연환경과 같은 넓은 장소를 제공해주고 야생동물로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해줘야 합니다. 또 동물을 돌보는 사육사들의 전문성이 필요하며 동물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곳은 유명한 동물학자인 제인 구달이 2012년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면서 “식생을 동물생태에 맞게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좋은 사례로 소개한 바 있다. 이 동물원의 36종 220여마리 동물 가운데 붉은사슴이 40여마리로 가장 많다. 전체 면적은 85만㎡나 되는데, 이 중 90%가 동물이 사는 땅이다. 전시된 동물을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야생에 숨어 있는 동물을 찾는 느낌이다. 국내에서 볼 수 없는 사파리 형태다. 승용차를 타고 동물원에 들어서자마자 눈앞에 산악지대의 넓은 초원이 펼쳐졌다. 초원에는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구불구불한 길이 곳곳에 나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승용차를 타거나 걸으면서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지난 7월20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에서 동물 수집 책임자 더글러스 리처드슨이 산양을 가리키며 동물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지난 7월20일 영국 스코틀랜드의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에서 동물 수집 책임자 더글러스 리처드슨이 산양을 가리키며 동물원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일우 기자
동물 수에 비해 면적이 넓고 전시 환경이 좋은 동물원은 세계적으로 많다. 그보다 한발 나아간 ‘착한 동물원’인 이곳은 또 다른 점이 있다. 희귀종이나 멸종위기종을 동물원에서 번식시키는 것은 물론 자연에 방사하고, 동물이 잘 살 수 있도록 자연을 가꾸는 일을 하고 있다.

영국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에서 종 보존
방문객에 공개 안해 수익없는데도
멸종위기종 들여와 번식 뒤 방사도
“종 보호 중요…누군가는 해야할 일”

수익도 안 나는데 왜? 이 동물원도 지난해 멸종위기종인 표범 암컷 한 마리와 수컷 한 마리를 영국의 트와이크로스 동물원과 에스토니아의 탈린 동물원에서 데려왔다. 모두 2014년에 태어난 표범이다. 그리고 내년 중후반 이 표범들이 새끼를 낳으면 원래 서식지인 러시아에 방사할 계획이다. 동물원은 같은 목적으로 살쾡이 6마리도 키우고 있다. 또 2011년 스코틀랜드 산악지역에서 물쥐 8마리를 포획해 1년 동안 번식을 거쳐 44마리로 불렸다. 이 동물원은 이렇게 번식시킨 물쥐를 2012년 모두 스코틀랜드 여러 지역에 나눠 방사했다. 멸종위기종인 이런 동물들은 방문객들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이 자랑하는 고릴라관의 한 고릴라. 유리방에 갇혀 있는 것은 여느 동물원과 다르지 않지만 왜 그런지 매우 활동적이다. 최우리 기자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이 자랑하는 고릴라관의 한 고릴라. 유리방에 갇혀 있는 것은 여느 동물원과 다르지 않지만 왜 그런지 매우 활동적이다. 최우리 기자
“동물원이 수익도 나지 않는데 이 일을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동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려면 동물이 있어야 하는데, 동물이 사라진다면 그것이 불가능해지지 않나요? 종을 보호하는 것은 중요하며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계속할 계획입니다.” 리처드슨이 말했다.

“사람들이 동물원에 와서 동물이나 보고 가는 게 좋은 것이 아니라 동물원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떻게 동물을 서식시키고 어떤 보호 활동을 하는지를 알고 가는 게 더 중요합니다.”

물론 애초부터 가둬 키운 동물을 자연에 방사하는 것이 이론만큼 쉽지 않다는 동물보호단체의 지적도 있다. 지난 6월12일 미국 워싱턴에서 만난 동물복지협회(AWI)의 나오미 로즈 박사는 “돌고래같이 똑똑하고 사회성 있는 동물일수록 가두었다가 풀어주는 것이 힘들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가두어 기르던 페럿(식육목 족제비과의 포유류로 크기는 암컷 30~38㎝, 수컷 50㎝ 안팎)을 야생에 풀어줬을 때 본능적으로 사냥을 하며 살았지만 매나 독수리 같은 천적을 당해내지 못해 결국 실패했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야생에서 성장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도록 동물원의 전시 환경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물원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서식지 보전이라는 것을 로즈 박사도 부정하지 않았다.


동물원 운영하는 미 야생동물보전협
2020년까지 알래스카·칠레 등 15곳
서식지 보호 계획 세우고 수익 기부

고릴라 보존과 서식지 보전에 쓰는 입장료 지난 6월9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동물원이 자랑하는 고릴라관(콩고관). 사람들은 한참 동안 고릴라관을 떠나지 못했다. 내부는 마치 야생에 들어온 듯 숲속의 습도가 느껴지도록 만들었고, 야생과 다르지 않은 고릴라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관람객들은 한순간에 매료됐다. 이곳은 뉴욕에서 유일하게 고릴라를 볼 수 있다.

관람객들을 안내하던 직원 엘리자베스 휘트니가 말했다. “안전을 고려해 암컷과 새끼들의 공간과 수컷의 공간을 나누었습니다. 콩고관에 내는 특별입장료 6달러(약 6600원)는 아프리카 콩고 분지 야생 보전에 쓰입니다.”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려면 야생으로 들어가는 유료 전차를 타야 한다. 최우리 기자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에서 코끼리를 보려면 야생으로 들어가는 유료 전차를 타야 한다. 최우리 기자
브롱크스동물원을 포함해 뉴욕에서 동물원 4곳과 수족관 1곳을 운영하는 야생동물보전협회(WCS)는 중장기 보전 계획을 이미 세워놨다. 2020년까지 보호지역 15곳을 설정해 집중적인 종 보전 중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것이다. 대상 지역은 알래스카 쪽 바다, 미국 동북쪽 숲, 뉴욕 바다, 칠레와 아르헨티나 바다, 남아시아 해안, 버마(미얀마)나 베트남 등 메콩강 남부 등 세계에 퍼져 있다. 동물원 쪽은 “직원 4200여명이 세계 60여개 지역 보전활동을 하고, 브롱크스동물원의 경우 최대 1천여명이 근무한다”고 답했다.

야생동물보전협회가 운영하는 주요 동물원인 브롱크스 동물원은 뉴욕에 있는 동물원 4곳 가운데 종 관리의 핵심이다. 암수 분리 사육, 수컷의 거세, 수컷의 정관절제술, 암컷의 자궁난관적출술, 경구용 피임약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과다 번식, 근친교배 예방 프로그램은 야생보전협회가 회장을 맡고 250여개 동물원과 수족관이 회원사인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AZA)의 기준을 따른다. 또 동물원과의 네트워킹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

6월8일은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여는 연례행사인 기부자들을 초청하는 파티가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열렸다. 외국은 동물원이 주요 기부처로 인식되고 세금혜택도 커서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가 많다. 야생동물보전협회의 수입 중 가장 많은 30%가 기부금에서 얻어지는 수익이다. 최우리 기자
6월8일은 미국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여는 연례행사인 기부자들을 초청하는 파티가 뉴욕 센트럴파크 동물원에서 열렸다. 외국은 동물원이 주요 기부처로 인식되고 세금혜택도 커서 기업이나 개인의 기부가 많다. 야생동물보전협회의 수입 중 가장 많은 30%가 기부금에서 얻어지는 수익이다. 최우리 기자
브롱크스 동물원 쪽은 “연간 동물 목표 숫자가 있어 이를 넘길 경우 다른 기관으로 보내거나 지나치게 많을 경우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2014년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기린을 안락사시킨 뒤 사자의 먹이로 줘 논란을 불러일으킨 덴마크 코펜하겐 동물원의 사례를 동물원 업계에서는 이례적이지 않게 받아들였다.

야생동물보전협회는 뉴욕시 공원관리, 문화·박물관 분야 예산에서 재정지원을 받는다. 이는 협회 전체 예산의 약 20%를 차지한다. 협회가 공영과 민영의 중간 정도 성격이다. 입장료가 비싸고, 전시 프로그램 성격 중 물개 먹이주기 시간 같은 상업적인 부분이 있지만 협회는 공영성을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한 해 수입(기부금 포함) 3억2790여만달러(3600여억원) 중 절반을 종 보전과 관리에 사용하고 있다.

국내 공영동물원 2곳만 종 보존 정책
작은 면적에 많은 동물 몰아넣어
돈은 돈대로 많이 들고 동물만 고생

한국 동물원 2곳만 보전 정책 국내의 경우 종과 서식지 보호, 보존, 보전에 인색하다. <한겨레>는 지난 7~8월 국내 공영동물원 10곳에 종과 서식지 관리, 보전 정책 수립 여부를 물었다. 종과 서식지 보전 정책을 운영한다고 답한 곳은 서울동물원과 청주동물원 두 곳에 불과했다. 나머지 서울어린이대공원, 대전오월드, 대구동물원, 전주동물원, 광주 우치공원, 울산동물원, 진양호동물원, 인천동물원엔 없었다. 복수의 동물원 관계자들은 “서울동물원 정도가 아니면 보전 정책을 추진할 여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내 동물원엔 종 관리, 종 보전과 서식지 보전의 개념조차 서 있지 않다. 전채은 동물을 위한 행동 대표는 “동물 수명이 있으니 10년 단위로 종 관리 계획을 세우고 집중할 동물과 아닌 동물을 구분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 다 같이 열악해지고 가계가 꼬여버렸다”며 “서울동물원 계획도 매년 종 보전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봐야 한다. 최근 몇몇 공영동물원에서는 종 관리 위원회를 만들려고 하지만 인기 종 위주의 번식 프로그램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명히 동물원은 종 보전 기관이어야 한다. 위원회를 만들어 시민사회가 기준을 마련해야 하고, 동물원은 이를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2020년까지 중장기 보전 계획으로 세운 뉴욕의 바다 보전 정책을 알리는 펼침막이 뉴욕 브루클린 근처에 걸려 있다. 최우리 기자
야생동물보전협회(WCS)가 2020년까지 중장기 보전 계획으로 세운 뉴욕의 바다 보전 정책을 알리는 펼침막이 뉴욕 브루클린 근처에 걸려 있다. 최우리 기자
하일랜드 같은 사파리형 외국 동물원은 면적 대비 전체 동물 수가 적고 예산 규모도 국내보다 적다. 결국 많은 동물을 관리하느라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한국 동물원과 상황이 다르다. 스코틀랜드 하일랜드에선 동물 1마리가 3863㎡ 면적을 차지하고 산다. 국내 최대 동물원인 서울동물원은 242만㎡ 면적에 280종 2896마리의 동물이 살아, 1마리당 835㎡를 차지한다.

민간이 운영하는 ‘스코틀랜드왕립동물학회’(RZSS)가 198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사파리 동물원인 영국 하일랜드 와일드라이프 파크의 한 해 예산은 50만~60만파운드(7억6000여만~9억2000여만원) 정도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의 95%를 입장료로 벌며, 동물원 안에 카페와 선물가게 등도 운영한다. 지난해 이 동물원 방문객은 13만7000여명이다. 성인 입장료는 15파운드90펜스(2만4400원)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은 받지 않는다. 반면 서울동물원의 한 해 예산은 인건비 포함 300억원에 이른다. 동물 수가 많으니 돈도 많이 들고 동물도 고생하는 형국이다.

규모 107만㎡, 동물 741종 1만여마리(어류, 무척추동물 포함)가 사는 미국 브롱크스 동물원은 동물 종과 동물 수가 많지만 입장료도 비싸다. 고릴라관 등 주요 동물사를 포함해 전체 관람을 하려면 36.95달러(약 4만원)다. 비싸서 부담이기는 하지만 그만한 환경을 조성한다는 것이 동물원 쪽 논리다.

동물복지협회의 캐시 리스 대표는 “내가 죽기 전에 동물원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동물에게 좋은 환경을 제공하는 동물원만 살아남아야 한다. 동물원은 관리하는 동물 종을 줄이고 전체 동물 수를 줄이고 야생과 흡사한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일랜드/김일우 기자, 뉴욕·워싱턴/최우리 기자 cool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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