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25대 임금인 철종이 왕위에 올라 강화도에서 궁으로 가던 행차 모습을 그린 행렬도.
인천시 강화군은 ‘살아 있는 역사박물관’이다. 선사 유적부터 각 시대의 흔적이 잘 남아있기 때문이다.
고려 때 축조된 강화산성(둘레 7122m) 안엔 북문 쪽 고려궁지부터 남문에 이르는 약 1㎞ 남짓한 거리를 중심으로 도시가 형성됐다. 조선 때는 25대 임금 철종이 왕위에 올라 서울로 가던 행차 길이어서 강화군은 이곳을 ‘왕의 길’이라고 이름붙였다. 지난 12일 강화읍 신문리 ‘왕의 길’을 찾았다. 1970~80년대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어 시간이 비껴간 듯했다.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용흥궁과 일본 경찰에 쫓기던 김구 선생이 공부하던 고택, 한옥 형태로 지은 강화성당 등 조선 시대와 근현대 건축물들이 여럿 눈에 띄었다.
무너진 담장 옆에 1938년 지어진 옛 평화직물 한옥과 소창공장. 강화군은 이 건물과 터를 매입, 직물 관련 체험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하지만, 골목길로 들어서자 흙과 돌로 빚은 건물 담벼락 곳곳이 무너져있었다. 지붕까지 내려앉은 빈집도 수두룩했다. 무너진 담장 사이로 1938년 지어진 옛 평화직물 소창(이불 등의 안감으로 쓰는 천) 공장도 보였다. 일본풍으로 지어진 이 공장과 터는 강화군이 사들여 직물 체험관과 전시관으로 바꾸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강화군은 1980년대까지 방직산업이 성황을 이뤄 황금기를 누렸다. 하지만, 1990년대부터 쇠퇴의 길을 걸어 노동자로 넘쳐나던 수십 개의 방직공장은 이제 도심 곳곳에 흉물로 남았다.
왕의 길 안 중앙시장에서 신발가게를 운영해 온 상인 ㄱ(70·여)씨는 "연간 100만명이 강화군을 찾는다고 하는데, 도심에서는 외지 사람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관광객이 옛 도심으로 유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시외버스터미널과 풍물시장, 인삼센터 등 인구 유입 시설을 성곽 밖으로 이전하고, 초지대교까지 개통되면서 이런 현상은 더욱 도드라졌다.
옛 양조장(천막)이 있어 사람들로 북적이던 골목길은 무너진 채 방치된 공가로 가득했다. 강화군은 양조장과 주변 골목을 활용해 옛 정취를 살리는 사업을 편다.
이 때문에 강화군은 다시 '왕의 길'에 주목했다. 문화와 역사,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아내는 도시재생 사업에 나섰다. 면적은 신문·관청·남산리 일대 1.01㎢에서 이른바 ‘마중물 사업’을 시작한다. 폐공장과 빈집 등 3000여㎡를 정비해 주민 커뮤니티 공간으로 만든다. 골목과 담장을 정비하고 벽화와 쉼터를 마련하며 우물터를 복원해 휴식공간을 만든다. 보행로가 없는 왕의 길 단절 구간도 새로 연결하고, 주차장으로 사용 중인 용흥궁 공원 일대의 복원 사업도 추진한다.
강화군은 100억원을 투입, 옛 도심이 번창했던 ‘왕의 길’을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다.
마중물 사업은 지난해 국토교통부의 도시재생활성화 사업에 선정돼, 2020년까지 사업비 100억원 가운데 60억원이 중앙정부 예산으로 지원된다. 송해영 강화군 도시개발과 도시재생팀장은 “이번 사업은 왕의 길 정비를 넘어 강화의 역사문화 가꾸기와 도시재생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말했다.
인천/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사진 강화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