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담담
전남대 건축학부 교수 바람이 선선하게 불고, 아침이면 옷깃을 여밀 만큼 추위도 느껴지는 가을이다. 매년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국립공원의 일상이 붉게 물든 단풍을 만끽하기 위해 방문하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바빠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나에게 가을 단풍은 대학 시절 처음 유럽 배낭여행의 추억을 되짚게 한다. 당시 해외여행 자율화 바람이 불었고, 그해 여름 유럽여행을 준비하고, 꽤 오랜 시간을 홀로 유럽 곳곳을 다녔다. 당시에는 디지털화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도서관에서 국가별, 건축가별로 자료를 정리해 복사하고, 유명 도시에 가서 꼭 봐야 할 건축물 목록을 꼼꼼히 체크하는 시간마저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첫 번째 나를 놀라게 한 것은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본 런던 인근의 도시풍경이었다.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을 넓게 펼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예쁘게 심어 놓은 것 같은 집합 단독주택지였다.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고, 그런 풍경은 오랜 기간 지속적이고 철저한 규제, 즉 건축디자인에 필요한 계획에 대한 제한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풍경은 도시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건축계획에 앞서야 한다는 중요함을 인식하게 했고, 도시를 지금껏 연구하는 계기가 됐다. 두 번째는 공항에서 출발한 앞사람의 무릎이 닿을 것만 같았던 촘촘한 좌석이 낯설게 느껴졌었던 지하철에서 나와 피커딜리 서커스역에 도착해 지상으로 나왔을 때,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펼쳐졌던 도시경관이었다. 언제 누가 어떤 양식으로 지었는지보다 먼저 느낀 것은 건축물들의 부드러운 곡선, 그 위에 몇 개인지 조차 몰랐던 건축물들이 휘돌아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경관,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도시가 제어하고 만들어 왔던 모습을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파노라마였다. 나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여전히 눈앞에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는 배낭여행 기간 중 두 번째 놀라움이었다. 세 번째는 1927년에 건축된 주거단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산 중턱에 있는 바이센호프 주거단지에서였다. 당시 유명한 건축가들의 향연과도 같았던 건축물들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곳으로, 건축 전공자들은 꼭 가봐야 하는 명소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 각 건축물의 디자인, 배치, 공간계획, 디테일 등 건축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가치 있게 보였던 것은 주거단지 밖 주변의 자연환경을 만끽하며 서 있는 두 노인, 푸른 잔디 위 벤치에서 한가롭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두 노인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은 그곳의 건축적, 역사적 가치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건축과 도시를 전공하고 있으며, 교육자인 나에게 건축과 도시의 관계를 어떻게 정의 내려야 할지는 고민스러운 숙제다. 건축은 개인의 소유물이다. 도시는 그 누구의 소유도 아니지만, 개인 소유물의 집합체이기도 하다. 공공용도의 공간이나 건축이 가져야 할 개념과 가치는 공생이자 상생이라는 것은 틀림없고,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 소유물인 건축의 가치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는 우리가 풀어야 할 고민이다. 런던의 도시경관을 위해 희생돼야 하는 것도 있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도 있다. 도시의 가치를 위해서 말이다. 독일의 주거단지에 사는 두 노인의 담소는 우리에게 도시에서 무엇이 중요한가를 명확히 전달해주는 것이 있다. 도시는 주변의 환경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사는 공간은 개인적 공간이지만, 도시의 가치를 만들어주는 공공성에는 어쩌면 많은 희생과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물론 공공적 가치를 위해서 지나치게 강요할 수는 없겠지만, 개인의 이기심은 자칫 먼 길을 가야 하는 도시의 지나친 욕심이 될 수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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