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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 기름유출 사고 10년 “검은 상처 강강술래로 달랬죠”

등록 2017-12-07 07:33수정 2017-12-07 09:04

서해안 기름유출사고 10년

1만t 기름에 삶터 갯벌 잃었던 태안 ‘만대마을’
갯벌 파면 ‘밥줄’ 굴 대신 기름덩이만 나와 절망
빚만 늘고 보상액 달라 주민 사이 틀어지기도

‘만대 강강술래’ 함께 만들어 공연 10년 상처 극복
변화 중심 ‘나오리’ 문예 교육으로 마을에 생기 돌아
지난해 전국 행복마을콘테스트 ‘대통령상’ 수상

지난 9월 ‘유류 피해 10주년 행사’ 참석 문 대통령
“공동체 정신으로 시련 극복한 만대 주민 존경”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깨끗해진 바다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이다. 최예린 기자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많은 사람의 노력으로 깨끗해진 바다에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형상화한 동작이다. 최예린 기자
“굴을 까세 굴을 까세/ 바람불고 날이 추면/ 굴을 따러 못 갈 텐데/ 파도 없고 잔잔하니/ 신명 나게 굴을 까세/ 강강술래 강강술래”

백발의 어르신 뒤를 사람들이 줄지어 따른다. 정화수 떠놓고 천지신명께 비는 기도는 한 서린 몸짓의 시작. 동그랗게 둘러선 정적 위로 자진모리장단이 덮어지더니 이내 맞잡은 손이 하늘 위 ‘덩실덩실’ 춤을 춘다.

서해안 유류유출사고 10주년을 한 달여 앞두고 충남 태안 이원면 만대마을(내2리) 나오리생태예술원(나오리)에서는 ‘강강술래’ 연습이 한창이었다. 진지한 표정의 사람들은 원을 좁혔다 넓히고, 풀었다 휘돌며 어울린 형태를 잔디 위에 그려 나갔다. 고사리손 아이들, 백발 할머니, 몸치 아저씨, 파마머리 아낙네, 푸른 눈의 외국인까지. 저마다 서툰 몸짓이 투박한 삶의 곡조만큼 아름다웠다.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정화수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작으로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최예린 기자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정화수 앞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동작으로 강강술래가 시작된다. 최예린 기자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충남 태안 이원면 주민들이 지난 10월24일 만대마을의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강강술래’ 연습을 하고 있다. 최예린 기자

■ 서해안 유류 유출 사고, 그리고 만대마을

2007년 12월 7일 아침 7시6분. 삼성중공업 해상 크레인이 충남 태안군 만리포 북서쪽 5마일 해상에 정박해 있던 유조선 허베이스피리트호를 들이받았다. 1만900t의 원유가 흘러나와 바다를 덮쳤다. 검은 기름은 빠른 속도로 가로림만을 향했다. 가로림만 입구인 ‘만대마을’ 앞바다에 검은 기름띠가 도착한 건 사고 다음 날이었다.

만대마을은 서해안 유류유출사고 발생 위치에서 직선으로 약 20㎞ 떨어져 있다. 구글 지도
만대마을은 서해안 유류유출사고 발생 위치에서 직선으로 약 20㎞ 떨어져 있다. 구글 지도
“해경이 와 오일펜스를 쳐도 속수무책이었쥬. 마을 앞 갯벌까지 시꺼멓게 온통 기름으로 뒤덮였는디, 마을 사람들 죄다 나와 기름 퍼내면서 울었시유. 바다가 우리 생명줄인디 이제 어찌 살라구….”

태안반도 땅끝, ‘너무 멀어 가다가다 만다’는 만대마을의 주 수입원은 ‘굴’이었다. 가로림만 사이에 ‘갈치 꼬랑지’처럼 좁고 길게 자리 잡은 마을에는 농사지을만한 땅이 변변치 않았다. 겨울철 앞바다에서 나는 굴을 캐고 까고 팔아 자식들 공부시키며 살았다. 낙지도 잡아 살림에 보탰다.

두꺼운 기름이 바다와 갯벌을 장악한 뒤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기름 닦는 품삯으로 한집에 1명씩 정부에서 공공근로비를 줬지만 1년여 뒤 그마저도 끊겼다. 주민들은 매일 굴 대신 기름 덩어리를 캤다. 겉으로 멀쩡해 보여도 호미로 갯벌을 파면 어김없이 기름이 나왔다. ‘살아야 한다. 기필코 살려내야 한다.’ 기름 냄새에 머리가 아파 갯벌에 토하면서도 기름 닦는 천을 놓지 못했다. 타들어 새까매진 마음은 갯벌 켜켜이 쌓인 기름처럼 닦고 또 닦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지난 10월24일 충남 태안 이원면 만대마을 앞바다 모습. 10년 전 서해안 유류유출 사고가 일어나자 이곳도 갯벌 안쪽까지 온통 기름으로 뒤덮였다. 최예린 기자
지난 10월24일 충남 태안 이원면 만대마을 앞바다 모습. 10년 전 서해안 유류유출 사고가 일어나자 이곳도 갯벌 안쪽까지 온통 기름으로 뒤덮였다. 최예린 기자

■ 상처 위에 피어난 만대 강강술래

상처는 정 많던 마을도 각박하게 만들었다. 몇평 안 되는 밭에서 농사지어 근근이 살아도, 주 수입원이 사라지니 빚만 늘었다. ‘보상금’은 상처에 더 큰 골을 냈다. 정부가 제시한 보상금은 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배 있는 사람, 양식업 하는 사람, 굴 캐는 사람, 낙지 잡는 사람…. 제각각 달랐다. 아무리 바다 일을 오래 해도 어업허가가 없는 사람은 한 푼도 받지 못했다. 그나마 나온 보상금도 몇 년 쌓인 빚을 갚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사람 욕심이 ‘똑같이 피해를 봤고 저 사람은 몇천만원 보상을 받았는데 왜 나는 10원도 못 받지?’ 그런 마음 들게 했쥬. 마음을 내려놨다가도 2차 보상 이야기가 나오니 다시 흔들리더라구유. 계속 화나고 짜증 나고…. 쌓인 화를 못 풀어 술·밥 자리에서 그런 말 나오면 괜히 시비 붙어 싸우고, 친한 사이도 틀어지고 했시유.”

만대마을에서 강강술래가 시작된 건 사고 4년 뒤인 2011년이었다. 만대마을 주민인 도예가 양승호(62)씨와 한국무용가 최화정(45)씨 부부가 만든 나오리에서 지역 아이들을 모아 문화예술 교육을 시작했다. 도자기를 만들고, 시도 짓고, 춤도 추면서 소외된 시골 아이들 마음이 따뜻하게 데워졌다. 아이들이 나오리를 드나들며 마을에도 생기가 돌았다. ‘예술이 밥 먹여주냐?”던 어른들도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이장, 개발위원장 등 마을 지도자들의 적극적인 관심도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모인 주민들은 난생처음 복식호흡도 배우고, 세대와 성별을 넘어 실컷 수다도 떨었다. 각자 일상을 적은 시는 한데 모여 노랫말이 됐고, 투박한 목소리는 자진모리장단에 얹혀 노래가 됐으며, 서로의 아이디어로 만든 서툰 동작은 춤이 됐다.

“봄에 수업을 시작할 땐 ‘오늘 뭐 했는지, 뭘 느꼈는지’ 물으면 다들 대답을 못 했어요. 충청도 사람, 자기표현에 더 서툴잖아요. 최 선생님이 ‘별거 없다. 고구마 캔 거, 굴 깐 거, 그날 자기가 한 걸 솔직하게 표현하면 된다’고 격려하며 이끌어주니 점점 자신감이 생겼죠. 가을쯤 되자 서로 자기 말하느라 바빴다니까요.”

만대마을 주민들이 2014년 10월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솔향기 바닷바람 한마당’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나오리생태예술원 제공
만대마을 주민들이 2014년 10월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솔향기 바닷바람 한마당’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나오리생태예술원 제공
그렇게 만들어진 ‘만대 강강술래’에 연극과 행위예술까지 더해 2014년 10월 ‘솔향기 바닷바람 한마당’ 공연을 무대에 올렸다. 10대부터 80대까지 24명 주민이 참여한 첫 만대 강강술래 공연이었다. 지난해에는 만대 강강술래로 전국 행복마을콘테스트에 나가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지난 9월 열린 ‘서해안 유류 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도 초청돼 개막 무대에 올랐다. 이 행사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해 만대 강강술래를 감상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에 참여한 작품을 공연하며 주민들의 자존감은 높아졌다.

“공연 때 까만 비닐을 흔들면서 기름이 바다에 출렁출렁 넘쳐 슬펐던 우리의 마음을 표현했어요. 모두 진심으로 춤을 춘 뒤 울었죠. 상처받은 마음이 다독여져 아무는 느낌이었어요.”

문 대통령은 공연 뒤 기념사에서 “참 가슴 뭉클하다. 주민들이 유류 피해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창작했다고 들었다. 강강술래를 통해 함께 손을 잡고 행복 마을로 거듭났다”며 “강인한 의지와 공동체 정신으로 시련을 극복한 마을 주민들에게 존경의 인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사고 10주기를 하루 앞둔 6일 김영희 전 만대마을 이장은 지난 9월 태안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서 문 대통령을 만나 전했던 간절한 바람을 털어놨다.

“대통령님은 오늘 다 정리된 이곳을 보셨지요. 이렇게 되기까지 자원봉사자 도움도 있었지만, 현지 태안군민이 정말 목숨을 내놓고 지킨 바다입니다. 이 바다가 다시 깨끗해지기까지 주민들이 얼마나 애썼는지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태안을 잊지 말아 주세요.”

만대마을 주민들이 지난 9월15일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서해안 유류 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서 만대 강강술래를 공연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름 바다를 상징하는 까만 비닐을 흔들며 지난 10년 태안의 상처와 아픔을 표현했다. 나오리생태예술원 제공
만대마을 주민들이 지난 9월15일 충남 태안 만리포해수욕장에서 열린 ‘서해안 유류 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서 만대 강강술래를 공연하고 있다. 주민들은 기름 바다를 상징하는 까만 비닐을 흔들며 지난 10년 태안의 상처와 아픔을 표현했다. 나오리생태예술원 제공

■ 예술로 공동체 품은 나오리

지난 7년 동안 주민들 곁에서 이 모든 일을 이끈 나오리의 두 예술가는 마을의 일원이자 이방인이었다. 나오리 대표 양승호 작가는 만대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20대 젊은 나이에 유럽으로 건너가 ‘트임 기법’이라는 도자기법을 창안했고, 스위스·프랑스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다. 연로한 부모를 모시기 위해 고향에 돌아온 그는 2000년 생가 옆에 가마터를 박았다. 2001년 최화정 무용가와 결혼한 뒤 만대와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예술가 집단 ’나오리’를 만들고, 1년 중 절반은 한국에서 나머지는 유럽에서 생활하는 ‘반쪽 정착’을 시작했다.

양승호 도예가(나오리 대표, 왼쪽)와 최화정 한국무용가(나오리 부대표)가 지난 10월24일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한겨레>와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양승호 도예가(나오리 대표, 왼쪽)와 최화정 한국무용가(나오리 부대표)가 지난 10월24일 나오리생태예술원에서 <한겨레>와 만나 활짝 웃고 있다. 최예린 기자
경남 마산이 고향인 최씨에게 충청도 태안반도 끝의 외딴 마을은 말투와 소통 방식, 자연환경까지 흥밋거리 투성이었다. 1997년 ‘강강술래춤의 무대화에 관한 고찰’이란 논문을 발표한 그는 만대마을로 이주한 뒤 태안 지역의 전통 민요와 민속춤을 찾아다니다 실패했다.

“다른 문화권에 살던 제게 태안 지역 사람들의 소통 방식과 행동, 고유의 소리는 아주 독특하게 느껴졌어요. 민요도 민속춤도 처음부터 있던 건 아니니 여기 사람들 지금 삶을 무대양식으로 옮겨보자 마음먹었죠.”

유럽에서 활동은 이들에게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고민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2007년 서해안 유류 유출 사고 뒤 ‘마을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사명감이 이들을 ‘지역 문예 교육’에 나서게 했다. 기름 제거 작업을 위해 만들어진 마을 길(지금의 솔향기길)에 생태를 모티브로 한 설치 작품을 만들고, 도예·무용 수업으로 주민들 마음의 상처를 끄집어내 어루만졌다.

양승호 도예가의 ‘나오리 도예 수업’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흙을 빚어 만든 각자의 ‘자화상’. 최예린 기자
양승호 도예가의 ‘나오리 도예 수업’에 참여한 마을 주민들이 흙을 빚어 만든 각자의 ‘자화상’. 최예린 기자
자기 작품 할 시간을 뺏기며 주변 예술가들에게 ‘바보’ 소리를 들어도 기름 얼룩지고 소외된 마을을 떠날 수 없었다. 문예 교육을 시작한 뒤 여름방학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만대마을에서 지낸다. 생기 잃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으려 거의 매년 개최한 ‘나오리생태예술축제’는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올해는 이원면까지 참여 대상을 넓혀 ‘이원 강강술래’로 축제 무대를 꾸몄다.

강강술래 공연 연습 뒤 ‘내 고향을 진정 사랑한다’며 울먹이는 남편 옆에서 최씨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 왔을 때는 마을에 젊은 사람이 없었어요. 2003년 딸을 낳으니 동네 어르신들이 ‘마을에 아이가 생겨 좋다’며 다들 찾아오셨죠. 바다에 나가 직접 잡은 미역을 싸 들고 온 분도, 복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해진 지폐 2장을 꺼내며 소고기 사 먹으라던 분도 계셨어요. 그런 마을 분들의 순수한 사랑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받은 사랑을 다시 나누는 건 당연하지요.”

지난 9월15일 ‘서해안 유류 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도자기. 양승호 도예가가 태안 지역 모래로 만든 작품으로 현재 나오리생태예술원에 전시돼 있다. 나오리 쪽은 이 도자기를 태안 천리포에 있는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최예린 기자
지난 9월15일 ‘서해안 유류 피해 극복 10주년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서명한 도자기. 양승호 도예가가 태안 지역 모래로 만든 작품으로 현재 나오리생태예술원에 전시돼 있다. 나오리 쪽은 이 도자기를 태안 천리포에 있는 유류피해극복기념관에 기증할 계획이다. 최예린 기자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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