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수능에서 만점을 받은 15명 중 유일하게 대안학교 출신인 심지환군(19). 지혜학교 제공
공교육을 접한 기간은 딱 1년이었다. 제도권 교육의 틀을 따라 가지 않았다. 자유스러움이 좋아 미인가 대안학교에 다녔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지혜학교 출신 심지환(19·경기도 광주시)군은 스스로 길을 찾아가는 것에 더 익숙했다. 공부도 그 중의 하나였다. 그는 2018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문과)이라는 기쁨을 맛보았다. 교육부가 발표한 수능 만점자 15명 중 검정고시생 1명이 바로 심군이다. 심군은 2011년 중·고교 통합과정인 지혜학교에 입학해 검정고시를 거쳐 지난 해 대학입시에 도전했다가 실패하고 올해 다시 도전했다. 국내에서 대안학교 출신 학생이 제도권 시험인 수능에서 만점을 맞은 것은 처음이다.
심군은 1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푹 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입시 준비를 하며 가장 힘들었던 점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시험 점수에 연연하지 말자고 다짐했는데도 정작 점수가 안좋게 나오면 그 점수에 얽매이게 됐던 점”을 들었다. ‘수능 만점 비결’을 묻자, “매일 깨어있는 시간에 충실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사회학을 복수전공한 뒤, “학술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이후 진도 팽목항까지 걷고 있는 지혜학교 학생들. 지혜학교 제공
그는 대안학교에 별 거부감이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미인가 대안학교를 다녔기 때문이다. 공교육 경험은 초등학교 6학년 1년 동안이 전부였다. “(일반)학교는 우유 마시러 다녔던 것 같아요(웃음). 제도권 교육을 처음 겪으니까 모든 시스템이 새롭더라구요. ‘어? 교실에서 실내화도 신어야하는구나’하는 것 등…” 그는 “(대안학교 선택에서) 부모님 영향을 받았지만 대안학교의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군의 부모는 자영업을 하고있고, 그는 2남 중 장남이다.
그가 다녔던 지혜학교는 2010년 문을 열었다. 교육청에서 인가받지 않는 미인가 대안학교다. 국내 대안교육 운동의 산증인인 김창수(60) 지혜학교 이사장이 2009년 목사·스님·교수 등과 협의해 설립한 학교다. “적어도 세상을 향해 좋은 씨를 뿌린 뒤 그 수확물을 내가 갖지 않아도 기뻐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을 교육하고 싶었다.”
110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이고, 30여 명의 교사가 재직중이다. 철학·인문학 중심의 대안학교여서 국·영·수 중심의 입시교육을 하지 않을 뿐, 끊임없이 공부하고 여행·명상·토론 등을 통해 삶의 길을 탐색한다.
2011년 입학한 심군은 6년 동안 철학·인문학을 공부하고 학교신문 기자를 했다. ‘철학·인문학 특화 학교의 특징’부터 물어보았다. “처음엔 철학이 우리(생활)하고 동떨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철학이라는 게 좋은 것은 알겠는데, 나하고 무슨 상관이지?’하는 느낌…. 그런데 5학년(공교육의 고2 해당) 말쯤 철학이 조금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철학을 접하게 해준 것은 긍정적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철학 교육이) 사고하는 과정 등 좀 더 심화되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고 덧붙였다.
지혜학교 학생들이 광주광역시 등임동 학교 교실에서 명상 수련을 하고 있다.지혜학교 제공
지혜학교 학생들은 보통 1년에 20~30권의 책을 읽는다. 장동식 지혜학교 교사는 “많이 읽은 학생은 1년에 80여권 정도까지 읽어낸다”며 “지환이는 집중력이 뛰어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지혜학교에서는 고2에 해당하는 5학년 때 졸업논문을 쓴다. 심군은 <각 중등교육 과정의 융합수업 비교> 연구로 논문을 썼다. 그는 “학제보다는 수업이 연결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고 했다. 고3에 해당하는 6학년이 되면 15명 정도의 학생 중 절반 정도가 진학반으로 가 대학 입시를 준비한다. 심군도 대학 입시를 준비하기 위해 대입 검정고시를 치렀다.
학교생활 중 가장 흥미로운 분야는 ‘신문읽기’였다고 한다. “5학년 때 학교 신문인 <지혜신문> 기자를 했어요. 신문에 기사를 쓰고 후배들의 기사도 첨삭해주기도 했지요. 5학년 3~4명이 기자 겸 편집장 역할을 한 셈이지요. 그 때 언론의 관점이 얼마나 중요한 지도 배웠어요. 일간지도 많이 읽었어요. <한겨레>도 잘 읽었고요.”
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에 있는 지혜학교 교정에서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지혜학교 제공
지혜학교 학생들은 사회문제에도 적극 발언을 한다. 심군은 “사회 참여는 시민으로서도 긍정적인 활동이니까 좋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 6월 세월호 참사 직후 또래들의 희생을 애도하는 행사가 교내에서 자발적으로 열렸다. 학생들은 사건 의미를 탐색하는 자료를 수집하고 토론했다. ‘세월호 기억 학생위원회’도 꾸렸고,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학생선언’을 내기로 했다. 심군도 2014년 6월 진도에서 사흘동안 50㎞를 걸었다. 그는 “팽목항에서 복잡다단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심지환(가운데 왼쪽에서 두번째)군이 지혜학교 교실에서 학생들과 토론하고 있다. 지혜학교 제공
그는 ‘대안학교의 철학·인문공부가 입시에 도움이 됐느냐?’는 질문에도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 “물론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됐겠지요. 장문의 글을 버틸 수 있도록 독서도 했고요. 하지만 사실 ‘대안학교에서 얻은 지식이 입시에 쓸모가 있는가’로 (대안학교를) 재단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생각합니다. 대안학교에서 배운 것은 삶 전반에 관한 것이니까요. 서로 목적이 다르지 않나요?”
심군은 우리나라 교육체계가 다양화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도 밝혔다. “사실 저는 인가 교육시스템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인 편이예요. 학생부종합(학종)의 확대라는 것도 제도권 교육에 종속시키는 수단이 될 수 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자유롭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고 보기 때문에 대안교육 방식도 옳을 수 있지요. 교육의 다양성이 확대돼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