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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미스터리’ 광주 부엉산 유골, 5·18 행불자일까

등록 2017-12-18 05:02수정 2017-12-18 08:57

암매장 의혹 주남마을 인근
주검 목격한 주민이 1989년 제보
사망 추정시점 엇갈려 미궁으로

광주시, ‘유골 DNA’ 검사 의뢰
5·18 행불자와 일치하는지 비교
6명 신원 밝혀낸 적 있어 촉각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과)가 1989년 1월14일 광주 동구 지원동 부엉산에서 발견된 유골을 육안으로 감정하고 있다. 박용수씨 제공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과)가 1989년 1월14일 광주 동구 지원동 부엉산에서 발견된 유골을 육안으로 감정하고 있다. 박용수씨 제공
유골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뱀을 잡아 생계를 잇던 ‘땅꾼’ 윤영길(1963년생)씨는 1980년 5월말~6월초께 부엉산(해발 400m)에서 피투성이로 숨져 있던 한 주검을 목격했다. 겁에 질린 윤씨는 신고하지 못했다. 1987년 7월께 뱀을 찾다 그 현장에 다시 가게 됐다. 주검은 유골이 돼 있었다.

‘공수부대 주둔지’ 구멍 뚫린 유골

윤씨는 유골을 인근 바위틈 밑으로 옮겨 두었다. 1989년 1월11일 윤씨는 국회 광주청문회 방송을 보다가 용기를 내 5·18단체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이튿날 부엉산 유골이 한 언론을 통해 처음 알려졌다. 돌더미에서 발견된 머리뼈 유골은 왼쪽 뒤에 지름 5㎝ 정도의 구멍이 나 있었다.

부엉산은 주남마을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있다. 주남마을은 1980년 5·18 당시 7·11공수특전여단 주둔지였다. 이 일대는 5·18 암매장 의혹이 강하게 제기된 곳이다. 실제 이곳은 광주~화순을 오가는 길목으로 80년 5월23일 두차례 버스총격 사건으로 수십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주남마을 뒷산에선 2명이 즉결처분돼 암매장됐다. 80년 5월24일 중학생 김부열(1963년생)군이 총에 맞아 부엉산에서 발견됐다. 5·18 직후 행방불명돼 주검을 찾지 못한 가족들과 5·18단체들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유골 놓고 엇갈린 법의학자들 증언

하지만 이정빈 서울대 의대 교수(법의학과)는 1989년 1월14일 광주 부엉산에서 유골을 눈으로 살펴본 뒤 “길어야 5년, 3년 안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1989년을 기준으로 1983년 이후 사망했다는 이야기였다. 당시 <기독교방송>(CBS) 기자로 부엉산 유골을 처음 보도했던 박용수 전남대 5·18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유골과 함께 나온 담배 필터의 길이가 24㎜짜리였는데, 이 필터는 1978년 6월부터 생산됐다는 점을 밝혀내 이 교수의 육안감정 결과에 이의를 제기했다”고 말했다. 이후 5·18단체 회원들이 반발했지만, 권위 있던 법의학자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었다.

땅꾼 윤아무개씨의 1989년 1월 제보로 광주시 동구 지원동 부엉산 바위틈에서 발견된 유골. 박용수씨 제공
땅꾼 윤아무개씨의 1989년 1월 제보로 광주시 동구 지원동 부엉산 바위틈에서 발견된 유골. 박용수씨 제공
검찰은 부엉산 유골을 서울로 옮겨 분석을 의뢰했다. 김종열 연세대 치대 교수가 1989년 5월6일 광주지검에 제출한 부엉산 유골 최종감정서엔 ‘40대 초반 남자로 최소한 6년 이전(1989년을 기준으로 할 때 1983년 이전)에 숨졌다’고 돼 있다. 특히 ‘턱과 양쪽 뺨 등 3곳에 작용면적이 작은 물체의 빠르고 강한 외부 힘이 작용해 치아 대부분이 손상을 입어 숨졌다’고 나와 있다. 공수부대가 휘두른 곤봉에 맞아 숨졌을 가능성이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검찰은 김 교수의 유골 감정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1993년까지 한 언론에서 이런 사실을 보도했지만, ‘여론의 관심이 빠진 뒤’였다. 이정빈 교수는 1993년께 한 언론에 “1989년 당시는 정확한 감정 이전에 외견적 소견을 얘기했을 뿐”이라며 “연대 추정은 치아 측정이 정확하기 때문에 곧바로 김종열 교수에게 의뢰했다”고 해명했다. 김종열 교수와 함께 유골 감정에 참여했던 윤창륙 조선대 치대 교수는 “유골 감정 결과 사망자는 42살 안팎으로 나왔고, 누군가에게 (곤봉 등으로) 맞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28년 만에 유골 DNA 검사

광주시는 지난달 초 부엉산 유골의 유전자(DNA)가 5·18 행방불명자와 일치하는지 전남대에 조사를 의뢰했다. 부엉산 유골은 2001년께 5·18단체 요구로 광주로 옮겨와 박종태 전남대 의대 교수(법의학교실)가 보관해왔다. 전남대 의대 법의학교실은 광주시가 2000년 11월부터 확보한 5·18행방불명자 130가족, 295명의 혈액을 채취해 보관하고 있다. 5·18을 전후해 행방불명자로 신고된 이는 300여명에 이르지만, 심사를 거쳐 관련자로 인정된 이는 82명에 그친다. 2002년 디엔에이 감식으로 무명열사 6명의 신원이 밝혀졌다. 이 가운데 3명은 부엉산과 주남마을 인근에서 발견된 주검들이다. 하지만 지금도 행불자로 인정된 75명의 주검은 어디에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광주/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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