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여름에만 마시는 술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여 년 전 캐나다와 미국에서 시작된 ‘크래프트 맥주’(수제 맥주 혹은 소규모 양조장 맥주) 유행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맥주는 이제 계절과 상관없이 그 맛을 음미하는 술이 됐다.
애주가들을 사로잡는 가장 큰 매력은 수백 가지, 어쩌면 수천 가지일지 모르는 다채로운 맛과 향이다. 같은 종류의 라거 맥주라도 오렌지 향이 나는가 하면 어떤 것은 장미 향이 난다. 도수도 3~4도부터 7~8도까지 다양하다. 와인처럼 10도 이상인 것도 있다.
맥주는 크게 에일류(상면 발효)와 라거류(하면 발효)로 나뉜다. 전자는 진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고, 후자는 가볍고 청량하다. 양조 장인의 철학이 스며든 맛, 소규모 생산이 특징인 크래프트 맥주도 에일류와 라거류로 나뉜다.
몇 년 전부터 제주는 서울 못지않은 크래프트 맥주의 각축장이 됐다. 서울에서 유명한 크래프트 맥주 전문점이 제주시에 자리잡는가 하면, 질 좋은 제주 물을 활용한 맥주 회사도 생겼다. 이들이 만드는 맥주는 제주의 독특한 향과 바람, 색을 담아 육지의 맥주와는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인다. 이제 ‘맥주’는 제주 여행객들의 필수 순례 코스가 됐다.
맥주 애호가의 제주 성지, ‘맥파이’
2012년 맥주 애호가들 사이에선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의 ‘희한한’ 맥줏집 얘기가 자자했다. ‘맛이 그동안 경험한 맥주와는 완전히 다르다’, ‘풍미가 와인과 다를 바 없다’ 등의 얘기들이었다. 그 소문의 진원지는 맥줏집 ‘맥파이’였다. 맥파이는 맥주를 좋아하는 미국, 캐나다 청년 4명이 뭉쳐 만든 술집이다. 이들은 레시피를 개발해 직접 맥주를 만들어 팔았다. 이들 맥주는 대량생산으로 획일화된 맥주에 질린 20~30대의 취향을 저격했다.
큰 성공을 거둔 이들은 지난해 제주시에 둥지를 마련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등을 운영하는 아라리오그룹 김창일 회장의 투자가 계기가 됐다.
맥파이 창업자들은 제주에선 맥주만 팔지 않는다. 각종 시설을 갖춘 양조장에서 시음, 견학 등 프로그램을 함께 운영한다. 금요일과 주말에 진행되는 맥파이 양조장 투어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발효통 등을 구경하면서 마치 갓 딴 과일을 맛보듯 신선한 맥주를 음미하는 코스다. 예약 필수인 이 투어는 인기가 많아 관심 있는 이라면 서둘러 예약하는 게 좋다.
제주시 탑동에 있는 맥파이 매장은 여행객들의 단골 순례지다. 세련된 라운지 바 음악과 웃음을 자아내는 각종 포스터가 뉴욕의 세련된 바에 온 기분을 들게 한다. 여행자뿐만 아니라 제주도민들도 자주 찾는 곳이다. 맥주로는 ‘페일 에일’, ‘더 고스트’, ‘포터’, ‘아메리칸 휘트’, ‘막차’ 등이 있다. 피자와 치킨 등을 안주로 판매하는데, 바삭한 치킨이 더 인기가 많다.
한두 잔 마시고 나서면 2분 거리에 바다가 있다. 살랑거리는 해풍과 깊은 바다 풍경은 알싸하면서도 깊은 맥파이 맥주와 닮았다. (제주시 탑동로2길 3, 1층/064-720-8227/6000~8000원)
제주 물맛을 살린 특별한, ‘제주맥주’
제주 금능 농공단지에 대형 시설을 지어 맥주를 만드는 ‘제주맥주’는 미국의 유명한 크래프트 맥주 브랜드 ‘브루클린’과 손잡았다. 브루클린의 맥주 양조 장인인 개릿 올리버가 완성한 ‘제주 위트 에일’ 등은 제주의 향토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맥주는 홉 등의 재료도 중요하지만 물의 질이 맛을 좌우한다. 팔도에서 물맛으로는 최고인 제주의 물로 만든 제주맥주는 이미 ‘맥덕’(맥주 덕후, 맥주 마니아) 사이에선 호평 일색이다. 브루클린맥주는 미국 에이피(AP)통신사 기자가 술이 금지된 중동에 파견 갔다가 한 모금 맥주가 절실해 직접 만들어 먹으면서 탄생한 술이다. 제주의 카페, 술집 등에서 판다. (제주시 한림읍 금능농공길 62-11/
064-798-9872)
진짜 제주 맛, ‘제주지앵’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소문이 자자하게 난 ‘제주지앵’은 ‘감귤 맥주’ 등 제주의 특색을 부각한 맥주로 승부를 겨룬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양조장이 알려지면서 더 관심을 끌었다. (제주시 청귤로3길 42-7/064-724-3650)
제주/글·사진 박미향 <한겨레> ESC팀장 겸 음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