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내부 전산망에 ‘달빛공조’ 수사를 통해 자살 직전에 있던 한 여고생의 목숨을 구한 광주북부경찰서와 대구달서경찰서의 공조 수사를 칭찬하는 글 수십여건이 올라와 있다. 광주북부경찰서 제공
답답했다. 고등학교 2학년인 딸이 학교가 파한 뒤에도 집에 오지 않았다. 친구들도 행방을 몰랐고, 휴대전화기가 꺼져 있었다. ㄱ(44)씨는 지난해 12월29일 오전 11시30분께 경찰에 딸 김아무개(17)양의 가출 신고를 했다. 이 사건은 광주북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과 실종수사전담팀이 맡았다. 실종수사전담팀 천대중(48) 경위는 “처음엔 단순한 가출사건 정도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신설된 이 팀에 오기 전 17년동안 강력수사를 했던 천 경위는 김양이 남긴 두가지 ‘신호’가 확인되자 단순 가출이 아니라는 느낌이 왔다.
첫번째 신호는 김양이 친구들에게 남긴 ‘말’이었다. 김양은 “내가 죽으면 책상에 국화꽃을 올려달라”고 가출 당일에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평소 학교 성적이 좋았고 모범생인 김양은 가정이 화목하고 부모와 사이도 좋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그냥 장난말인 줄 알았다”고 한다. 경찰은 김양이 컴퓨터 포털사이트에서 ‘자살사이트’와 ‘자살방법’ 등을 검색한 점을 발견했다. 김양 책상 아래에 둔 번개탄도 심상치 않은 신호였다.
이 때부터 ‘비상’이 걸렸다. 강정식 팀장 등 6명이 전원 사무실로 복귀했다. 곧바로 김양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부터 시작했다. 경찰은 김양이 지난달 30일 휴대전화기를 한번 켰던 장소가 대구 달서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을 통해 김양이 12월29일 광주광천동 버스종합터미널에서 동대구로 가는 버스를 탔다는 것도 확인했다. 대구달서 경찰서와 협력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김양을 찾는 데 실패했다. 천 경위는 “휴대전화를 켰던 지점의 반경 2㎞ 안 숙박시설 등을 꼼꼼하게 수색했지만, 범위가 넓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실종수사전담팀은 “이러다가 정말 아이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절박감이 몰려왔다. 그래서 김양의 위치를 ‘콕’ 찍어내는 데 주력했다. 휴대전화 통화내역이 필요했다. 그런데 보통 ‘통신자료 허가서’를 받으려면 검찰과 법원을 거쳐야 해 2~3일이 걸린다. 천 경위는 “그러면 사건이 끝나버릴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검찰을 통해 법원에서 ‘긴급 통신자료 허가서’를 받아냈다. 그리고 김양이 12월29일 동대구에 도착할 무렵 ‘기존에 없던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를 건 사실을 파악했다.
김양이 마지막으로 통화한 이의 주소지를 알아낸 것이 지난 1일 오후 3시였다. 대구달서경찰서 여성청소년과 경찰관들은 곧바로 이 휴대전화 번호의 주인이 사는 집으로 출동했다. 북부경찰서 실종수사전담팀은 1일 오후 3시30분께 대구 경찰관들한테서 “김양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김양은 인터넷을 통해 만난 20대 여성 1명과 20대 남성 1명 등 2명과 함께 경찰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구조될 당시 김양 등 3명은 12월 30·31일 두번의 자살 시도에 실패하고 세번째 자살을 하려던 참이었다.
극적으로 구조된 김양은 지난 2일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아 감사의 마음을 전달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김양은 “부모님이 너무 잘해주시는데 앞으로 공부를 못하면 실망할 것 같았다. ‘나만 없어지면 주변 사람들도 편해지겠지’라는 생각에 잘못된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 양은 “곧바로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분위기에 휩쓸려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고도 했다. 김양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좋은 일이 있으면 행복한 줄 알았는데 아무 일 없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내 품에 딸을 다시 안겨 주신 경찰관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해결한 것은 ‘달빛공조’ 덕분이다. ‘빛고을’로 불리는 광주에서 발생한 수사에 ‘달구벌’로 불리는 대구달서경찰서가 일이 많아 바쁜 연말·연초인데도 적극 수사에 협력했다. 그리고 광주북부경찰서의 실종수사전남팀도 큰 역할을 했다. 광주경찰청은 지난 해 11월 실종 신고된 여중생이 살해당한 ‘어금니 아빠 사건’ 이후 전국 광역시 단위에선 처음으로 5개 경찰서에 실종수사전담팀을 꾸렸다. 천 경위는 “여성청소년과에 실종사건전담팀이 만들어지면서 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광주경찰청이 경찰 내부 전산망에 이 사실을 알린 뒤, 7일 내부 전산망엔 ‘자랑스럽다’, ‘나도 눈물난다’, ‘공조수사의 중요성을 증명한 쾌거’라는 등 경찰 동료들의 격려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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