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 소장
며칠 내내 눈보라가 몰아쳤다. 하늘길 결항 뉴스만큼. 폭설은 제주의 산과 바다를 뒤집어놓았다. 길을 지우고 집의 통로마저 지웠다. 중산간 마을에 사는 지인은 며칠째 나갈 수 없다고 고립무원의 목소리를 내보냈다. 제주 이주 첫 겨울이라는 이도 놀란 소리다. 길은 막히고 차는 느렸으나 눈의 섬은 아름다웠다. 눈발의 틈을 타 돌아본 제주는 온통 멈추고 싶은 화면들이다. 군데군데 초록과 흰이 뒤엉킨 오름의 봉우리며, 새하얀 동산의 능선이며, 둥근 봉분의 무리. 파도와 묘한 조화를 이루는 바닷가 검은 밭 돌담과 굽이치는 해안선은 황홀하였다. 현무암에 붙잡힌 눈보라의 파편이 거기 그대로 돌구멍에 붙잡혀 선의 형태를 바꿔 놓고 있었다. 간혹 세찬 눈 폭풍 앞에서 넘어질 듯 셔터를 눌러대며 찬탄하는 모습들이 풍경으로 왔다. 생각했다. 인간과 자연의 한판 승부처럼. 토속적인 것들이 사라진 제주도의 외양을 하늘이 잠시나마 위로하듯 그렇게 바꾸는 건가.
한때는 그토록 붙잡아두고 싶었던 순간들을 위해 무장한 많은 사진가가 이런 날 제주에 몰려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런데 그 뜨거움은 눈 녹은 후에 드러난 제주 풍경의 변화처럼 언제부터가 식어가고 있지 않은가.
“제주가 변해도 너무 변했어.” 10년 전 올레길을 걸었던 이는 참 많이 변한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설 즈음 수년 만에 고향에 온 친구는 옛 자기 집 찾는데도 애를 먹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재일동포들에게선 더 놀라운 탄성이 나온다. 제주의 모습들은 끊임없이, 낯선 얼굴들로 변하는 중이다.
얼마 전 대했던 제주 옛 문헌을 평생 연구하고, 대중화 작업을 하는 향토사 원로의 애정어린 탄식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옛 비석들이 후손들에 의해 뽑히는 모습을 보면서 ‘아!’ 소리가 나왔단다. 그건 어느 유명한 진사의 비석. 비석은 옛 지명의 이름도 말해주고, 많은 향토의 콘텐츠를 품고 있다. 지피에스를 찍으면 묘 있던 데가 나온다. 헌데 200년 전 지은 비문을 자손들이 적어서 놔두지 않는다. 자손들이 몰라서 훌륭한 옛 학자의 글씨도 아파트를 지으면서 묻어버리는 모습을 봤다. 그것을 없애라 하는 게 아니다. 옮기는 걸 반대하는 것 아니다. 거기에 작은 이정표라도 세웠으면 한다는 얘기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하나하나 기록해 책으로 남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거다. 행정이 협조하면 후세대 연구자료로 남길 수 있다. 중요한 것들은 제주돌문화공원으로 모을 수도 있다. 중산간 골프장개발로 사라진 옛 이름들을 지도에 표시하면 어떤가. 길은 없어져도 동산 이름은 지도상에 남는다. 한 수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경우도 있었다. 그냥 두면 더 빛나는 경관에 바위를 뚫고, 쇠기둥을 박고 있더란다. 한 달 후 쯤 도에 심의가 들어왔다. 난간이 설치됐다. 원형을 보존해야 하는데 너무 나간 후였다.
걷다보면 보인다. 바닷가의 퇴색한 난간은 더 위험한 경우가 많다. 바닷물에 오래 버티지 못하는 목재는 사람들에게 그리 편안한 길이 아니다. 바다 조망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그 길을 걷는다. 해안가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밖으로 길을 내야 맞다. 해안을 메우는 비용이나 밭을 사는 비용과 같지 않은가.
낡아 보이는 것들이 제주를 오래 사랑할 수 있게 할 것이다. 문화 없는 관광은 오래가지 못한다. 과거의 올바른 역사 기록 없이 현재가 없다는 걸 현대사에서도 보고 있지 않은가. 문화도 그렇다. 오래된 문화가 오래가는 힘이다.
제주를 찾는 사람들이 반하는 것은 중산간에 건설하는 거대 건물이나 쭉쭉 뻗은 길 만이 아니다. 옛 문화, 이야기가 살아있는 제주도. 발길이 멈추고, 마음이 머물고 싶은 순간의 제주도. 눈이 만든 섬의 풍경이 아니어도 황홀한, 멈추고 싶은 제주다운 섬, 그런 제주도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