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山水) 이종률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산수(山水) 이종률 선생은 독립운동가이자 통일운동가였다. 1905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선생은 25년 우리나라 최초 사회주의 학생 모임인 ‘공학회’ 대표를 맡고, 27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입학해 신간회 동경지회를 결성하는 등 독립운동에 나섰다. 귀국해선 경성고 학당 교사로 일하며 학생운동을 돕다가 ‘조선 학생맹휴옹호 전국동맹 사건’으로 수감되는 등 항일 학생운동에 힘썼다.
선생은 해방 뒤 조선학술원을 창립해 서기국 상임위원을 맡았다. 47년엔 ‘민주주의 독립전선’을 만들어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반대를 주도했다. 남북 분단이 곧 동족상잔으로 이어질 것을 예견한 것이다. 한국전쟁 뒤엔 평화통일운동을 주창했다. 52년부터 부산대 정치학과 교수로 일했던 선생은 60년 4·19 혁명 뒤 단체를 결성해 통일운동을 이끌었다. <민족일보> 창간에도 참여했다.
선생은 61년 5월 박정희 군사 정권의 혁명 특별재판소에서 민족자주통일 중앙협의회 민족자주통일방안 심의위원회 사건과 <민족일보> 사건 등 반국가 행위 피의자로 기소돼 사형을 구형받았다가 65년 형 면제로 풀려났다. 이후 경남 양산 개운중 교장 등을 지내며 민족교육사업을 펼치다가 89년 숨졌다. 선생은 2015년 11월 독립유공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
‘산수 이종률 선생 기념사업회’는 최근 부산 동구 초량동 민주시민교육원 나락 한알에서 창립총회를 열어, 하일민 부산대 명예교수를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기념사업회는 2000년 창립해 이종률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기리는 활동을 펼쳐왔는데, 창립총회를 통해 사단법인으로 체제를 정비했다.
하일민 이사장은 “특정 이데올로기에 기울지 않은 독창적 민족이론을 수립해 항일운동과 민족통일운동을 펼쳤던 이종률 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이론을 연구·계승·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김영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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