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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길’의 인문학과 ‘전북 1000리길’

등록 2018-03-21 10:09수정 2018-03-21 10:24

박학래

군산대학교 역사철학부 교수

전라도 정도 천년을 맞아 전북도는 지난해 ‘전북 1000리길’을 선정했다. 해안과 강변, 산들, 호수 등 4개 주제를 중심으로 선정된 전북도내 14개 시·군의 아름답고 걷기좋은 44개의 길은 405㎞에 이른다. 가도 가도 끝이 없어 보이는 들길을 지나면 이 땅에서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우리 조상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또 들길을 지나 만나는 잔잔한 호수길을 돌며 인생을 관조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바다 내음이 코끝을 자극하고 드넓은 바다에 떠있는 푸른 섬을 바라보며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으니 1000리길이 단순히 걷기에만 좋은 길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전북도는 생태관광과 연계한 인문학적 힐링관광 자원으로 이 길을 육성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길’이 가지는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그래서 길은 오래 전부터 일상생활과 문학의 화두였다. 길에 대한 철학적 성찰도 함께 이뤄졌다. 특히 동양 전통의 측면에서 길은 곧 ‘도’(道)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길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우리는 집을 떠나 길 위에서 타자와 만나 소통했고, 그 길 위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며, 그 이야기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됐다. 그래서 길은 역사와 문화를 오롯이 담고 있다. 길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명확하지 않아 우리의 인생행로와 비견되기도 하였다. 길이 보여주는 다층적인 구조는 우리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오기도 한다. 길이 보여주는 열림과 닫힘은 인생행로 뿐만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이끌어 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떤 이는 ‘길이 있는 곳에서 인간이 탄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렇듯 길이 갖는 다양한 층위의 의미 때문인지 길에 대한 세인의 관심은 이미 보편화하고 있다. 특히 인문학적 공간으로써 길이 갖는 의미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더욱이 길이 인간의 꿈과 생각, 그리고 느낌과 의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전북도가 ‘전북 1000리길’을 선정하고, 이 길을 통해 생태와 역사, 그리고 문화가 숨 쉬는 공간을 조성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일단의 문화정책이 유형의 문화재를 중심으로 보존에만 치중해 왔다는 점에서, 지역문화유산을 활용의 측면에서 접근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가진다.

다만 ‘전북 1000리길’ 선정과 활성화 이외에 조금 더 역사성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바람이다. 다시 말해 ‘전북 1000리길’도 좋지만 전북지역의 옛길에 대한 확인과 복원, 그리고 이에 대한 활용에도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산재한 생태·역사·문화 자원을 묶는 1000리길도 좋지만, 우리 선조가 일상의 삶을 살았던 옛길도 발굴하고 활용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아가 근현대를 거치면서 변형된 주요 도시의 골목길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서울시가 영조때 제작한 지도를 바탕으로 일제강점기의 지적 원도를 활용해 한양도성 옛길 620개를 찾아냈고, 향후 시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정보화시스템을 구축하고 다양한 스토리를 발굴해 옛길 탐방프로그램을 개발한다는 계획이 참고가 된다고 하겠다.

우리가 옛길에 마음이 끌리는 것은 잃어버린 과거에 대한 향수나 미래에 대한 거부감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다. 타자와 자연과의 조화로운 만남을 통해 살아있는 인간으로 살기 위한 마음에서 비롯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리고 옛길의 복원과 활용의 밑바탕에는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자산에 대한 철저한 수집·정리, 치밀한 고증·해석이 전제돼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봄을 재촉하는 봄비를 맞으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기운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이번 주말에는 ‘전북 1000리길’을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고 싶다. 그 길 위에서 지역주민과 함께 오순도순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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