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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전국일반

4·3 희생자를 위한 위로

등록 2018-04-04 15:08수정 2018-04-04 19:55

이야기 담담
허영선
시인·제주4·3연구소장

“우리도 봅니다. 그때 우리가 볼 수 없었던 봄 햇살 짱짱한 오늘을 보고 있는 당신들을 봅니다. 우린 우리의 잃어버린 명예를 되찾고 싶을 뿐입니다. 이름자에 빨간 줄을 보는 가족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그 이유처럼. 이제는 당신의 위로를 받겠습니다. 끝내는 ‘4·3의 진실이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했으니. 문재인 대통령의 그 신념에 찬 목소리를 우리도 그 시간 함께 들었으니. 우리의 신원을 풀어준다는 약속을 우리 앞에서 약속했으니. 부디 그리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전합니다. 우리의 슬픔을 잊지 마시라. 부디 우리를 잊지 마시라. 그 이유는, 그 광기의 시절을 기억한다는 건, 바로 인간이 인간다워야 할, 인간답게 살아야 할 조건이 무엇인지를 묻는 이유이기도 하거니. 절대 잊지 마시라.”

그렇게 듣고, 그렇게 건넸으리. 4·3평화공원 행방불명인 3896기의 표석과 그곳의 조각상으로 서서 끌려가며 돌아보는 애처로운 눈동자들이 꼭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제주4·3 70주년 추념식. 문재인 대통령의 그 첫걸음은 행불인들과의 만남. 3896기의 표석. 도열한 ‘돌아오지 않는 자’들의 이름 앞에 선 것이다. 대통령의 4·3추념은 불법군사재판으로 ‘수형인’이 됐거나 살려고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행방불명된 이들의 명예회복을 기다리는 유족들의 사무친 바람과 그 오래된 고통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시작됐다. 행방불명자들에 대한 위로였다.

“대통령이 참석한 것만으로도 가슴이 풀렸는데 사과까지 하니 너무나 감동하고, 감사할 뿐이지요.” 사진 한장 남아있지 않은 아버지가 그립다는 일흔 넘긴 딸 강춘희. 생전에 할머니는 손녀에게 육지형무소에서 행불된 아버지를 학교에서도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말하게 했다.

4·3으로 행방불명 부모를 두고 고아가 됐다는 일흔 여섯 된 아들도 한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어린 나를 먼 친족 집에 맡겨두고 붙잡혀간 거야. 어머니란 말을 해본 기억이 없어. 아버지의 기억도 딱 한 장면뿐이야.” 여섯 살 손주를 보면 내가 저 때 혼자였다는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난다고 했다.

눈물도 죄였던 시절, 죄없이 인천 소년형무소에 간 사이 어머니는 ‘북촌 대학살’로 세상을 떴고, 아버지는 행방불명됐다는 여든여섯의 아들 가슴은 전부 타들었다. 대통령의 ‘약속’에 기쁘지만, 오래 기다린 말이지만, 왜 그런지 밥알을 넘길 수 없어 했다. 너무 많은 기다림이 할 말까지 먹어버린 것일까. 뱃고동 소리만 나면 바다로 달려나가 기다리던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이중흥 행불인유족협의회장도 눈물을 닦았다.

“죽은 사람 길을 묻히지 않고 이런 기념일 해줘서 눈물이 다 납니다.” 스물둘에 홀로 된 아흔넷 강태여 할머니. 스물셋 남편이 죄없이 대구형무소에 갔는데 한국전쟁 이후 가보니 남편은 없었다. 죽었다는 말을 안 해줘서 방방곡곡 형무소 남편 찾아 안 다닌 곳이 없었다. 어린 아들 하나 데리고 평생 홀로 살아왔다는 그는 죽은 이가 불쌍하다 했다. 어느 딸은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도 자신도 완전히 뒤틀린 호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그 호적만이라도 바로잡게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4·3을 이제 그만 해도 된다고 할 때까지 하겠다고 했다. 4·3의 진실을 기억하고 드러내는 일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의 길을 열어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4·3이 역사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이번 사과는 2006년 노무현 대통령 이후 12년 만의 국가폭력에 대한 또 한 번의 사과였다. 4·3의 깊은 슬픔과 기억에 큰 힘을 실어준 그 약속들이었다. 대통령은 이제 그것들은 정부와 국회의 책임이라고도 했다. 4·3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그 첫 과제가 됐다. 참 공교롭다. 분단을 원치 않는 통일 열망의 표출이었던 제주4·3, 그 70년 추념의 날에 음악으로 하나를 이룬 평양 남북합동공연이 열렸다. 4·3의 봄날, 남북의 봄날이 그렇게 피어나듯,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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