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 숨 일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요한 19:6)성서 속 예수의 고난을 통해 군중의 소란스러운 희생양 제의를 본다. 오늘날 인권의 고난은 예수의 고난을 닮았다. 당시 차별받는 이방인, 세리, 고아, 과부와 어울리며 지내는 예수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종교권력은 핑곗거리를 찾았다. 게다가 예루살렘에서 먼 지역 나사렛 촌놈이었으니 그의 억울함을 대변해줄 든든한 세력도 없었다. 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을 자처한다며 마침내 그를 죽였다. 부활한 예수는 말한다. ‘평화가 당신들과 함께하기를.’ 그리고 새 계명을 남겼다. ‘서로 사랑하라.’ 제자들의 배신과 군중의 폭력 그리고 종교권력에 의해 죽음을 겪었지만, 그는 이 모질고 모진 사람들을 향해 평화와 사랑을 말했다. 이 예화는 인권에 핵심적인 영감을 준다. ‘모든 사람, 살아있는 모든 생명은 존엄하며 평등하다. 서로 인류애로 대하여야 한다.’ 세계인권선언문 1조다. 인권의 역사는 예수가 그렇듯 피해자들의 고통과 희생에 대한 고백의 역사요, 약자·소수자의 뜨거운 고통의 연대기다. 누가 여기에 재를 뿌리고 있는가? 헌법과 국제인권법의 기본취지와 정신에 따라 제정된 인권조례가 폐지되고 있다. 충남도, 충북 증평에서. 다음은 어디일까? 종교를 앞세우며 표에 갈급한 정치인들을 앞잡이 삼아 인권을 못 박고 있다. 언필칭 공동체의 소모적인 대립과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란다. 그리고는 감추었던 마음을 털어놓는다. 동성애자를 반대한다고. 우리에게 반대할 권리가 있다고. 비열하다. 성 소수자를 대상으로 혐오와 차별을 일삼고 있는 그들. 맹목적인 믿음이 무지한 혐오와 차별의 온상이다. 못 박아야 할 것은 혐오와 차별의 폭력적 행태들이다. 사람을 반대할 권리가 사람에게는 없다. 살아있는 생명을 반대한다는 것은 그 대상의 개조와 절멸을 원하는 것, 그 자체로 이미 반생명적이다. 성서에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자기성찰과 섬김과 사랑의 실천은 모르는 체하고 성 소수자들을 희생양삼아 그들이 원하고 이루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래도 민주주의는 아닌 것 같다. 인권적이고 평화적인 사회는 더더욱 아닐 것이다.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혐오스러운 말들이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라는 안전판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당연하고 마땅한 이 권리들을 쟁취하기 위해 인류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끔찍했다. 나치는 유대인과 집시 그리고 성 소수자와 장애인들을 가스실로 보냈다. 자신들 집단 이외에는 숨 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는 사회…. 이 소름 끼치는 상상을 나만 하는 걸까? 오랜 대립과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체제로 나아가는 한반도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시기이다. 긴 겨울 꺼지지 않았던 촛불의 힘이다. 그런데도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는 뱀처럼 똬리를 틀고 소수자들을 물어뜯고 있다. 이것이 일상에서 차별과 혐오를 향해 촛불을 들어야 하는 까닭이다. 나중에? 지금이 바로 그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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